[지평선] 외세에 휘둘린 레바논의 비극
2026-04-14 (화) 12:00:00
이영창 한국일보 논설위원
레바논은 동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588만 명의 나라다. 면적이 1만452㎢이니 경기(1만180㎢)나 경남(1만541㎢) 정도 크기다. 아랍인(95%)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만, 기독교 비율(41%)도 높은 다종교 국가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 최고 기온도 서울보다 평균 2도 이상 낮아 쾌적하다. 훌륭한 자연환경 덕에 일찍부터 사람이 정착했고, 유럽과 서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중동의 진주’로 불렸다.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레바논이 가장 잘나가던 시기는 1960년대다. 관광과 금융이 발달한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란 별칭을 가질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외세가 레바논의 미래를 망쳤다.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남부 레바논에 근거를 마련하고 이스라엘 공격을 준비했다. 이를 구실로 이스라엘은 제집 드나들 듯 레바논을 여섯 차례나 침공했다. 1982년엔 베이루트까지 진격해 수도를 포격했고, 민간인 포함 1만9,000명이 사망했다.
■바로 이때, 레바논엔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가 생겼다. 헤즈볼라는 정권까지 획득했다. 헤즈볼라가 레바논과 분리할 수 없는 정치적 실체로 부상하자, 나라 전체가 외세 지원을 받는 무장정파의 숙주 노릇을 하게 됐다. 이번에도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집중 공습을 당하며 참전국 아닌 나라 중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지만, 민간인 희생자는 애써 외면한다. 주권 국가가 외세의 대리 전장으로 전락하니 국민만 애꿎은 피해를 본다.
■풍부한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는 레바논의 비극을 보면, 나라의 생존과 부흥에 ‘외세’라는 변수가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외세에 감염된 정치, 자강에 실패한 국가에 닥칠 비참한 운명을 보여준다. 특정 국가에 경도되고 그 나라 이해만 대변하는 정치세력을 왜 경계해야 하는지, 나라 지킴을 외국에 의존하며 국방의 자주를 포기할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지도 알려준다. 북쪽의 적이 가장 위험하지만, 적은 북쪽에만 있지 않다.
<이영창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