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선배가 시카고에서 엘에이로 최근에 이주했다. 노년의 이주는 남은 삶의 재배치다. 관계의 이동으로 고독감이 크다. 시카고에 사는 지인에게 날마다 전화하여 외롭다고 하소연한다며, 그곳에 사는 후배가 선배를 방문해 달라고 전화했다. 이곳에는 딸 외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적적하고 사람이 그리울까?
팔순이 넘도록 건강하였던 선배는 지난해부터 아파서 병원에 여러 번 입원했다. 남편을 몇 해 전에 먼저 보내고 혼자 사는 그녀에게 휴스턴에 사는 아들과 엘에이에 사는 딸이 매번 비행기로 어머니 병간호하러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엘에이가 기후도 좋고, 마침 딸이 어머니가 살 수 있는 여유 집이 있어서 이곳으로 이주하게 됐다. 근 50년을 시카고에서 함께 보냈던 동창들, 교회 친구와 원로 간호협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며 맺은 여러인맥으로 즐겁게 지내던 분이다. 팔순이 지나서 제2의 고향인 정든 시카고를 떠나, 생소한 사람들과 새로운 곳에서 노년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노년의 이주는 단순히 집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평생 쌓아온 관계, 익숙한 거리, 몸이 먼저 기억하는 계절의 냄새까지 모두 놓아야 하는 일이다. 젊을 때의 이주는‘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이동이지만, 노년의 이주는‘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은 이동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조심스럽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가능한 익숙한 곳에서 살겠다고 고집하다 보면, 멀리 사는 자식을 불편하게 한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생긴다. 응급 시에 자식이 멀리서 살면 서로에게 난처한 일이 많다. 나 역시 오래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두 달여간 한국에 병간호하러 나갔었다. 남편이 일 나가며 중고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을 등하교시키며 바쁘게 지낼 때였다. 한국에는 병원에 보호자나 간병인이 24시간 있어야 하기에 동생과 밤낮으로 교대해 가며 생사의 기로에 있는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도 미국에 있는 가족들 염려가 되어 아버지에게 죄송했다.
자식 편에서 보면 연로한 부모 곁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다니는 직장을 바꾸기 쉽지 않고, 그들의 자식들 학교도 옮겨야 하는 불편 대신 은퇴해서 이사 부담이 덜한 부모님이 자식 곁으로 오길 바란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듯이 자식들과도 가까이 살아야 정이 들고 서로 필요한 것을 알아차려 도울 수 있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다 만나면 자식들이나 손주들도 서먹서먹하기 쉽다. 서로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살면서 후손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노년의 즐거움이다.
C선배는 다행히 건강하고, 운전해서 10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나가며 일주일에 세 번씩 탁구 치려 다닌다. 문학에 소질이 있어서 교회에 칼럼도 썼다고 해서 우리 글 모임에도 초대했다. 좋아하는 냉면을 먹으며 시카고 시절을 재미나게 나누었다. 그때 30대였던 선배들이 80대가 되어 노년을 어디서 어느 자녀와 가까이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나 역시 남의 일 같지 않다.
선배, 따뜻해서 살기 좋은 엘에이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어차피 인생이란 때가 되면 언젠가는 정든 곳을 두고 떠나는 것 아닙니까? 여태껏 살아온 것처럼 천천히 이곳의 햇살과 사람을 즐기며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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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