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파마머리에 키가 큰 동숙 아줌마는 팔순이 넘은 엄마가 노인 아파트에서 만난 같은 고향 사람이다. 두 사람이 대화할 때면, 말끝과 억양이 비슷해, 마치 엄마가 이모와 말하는 듯하다. 말수가 적은 아줌마는 텔레비전에서 우스운 장면이 나와도 잘 웃질 않는다. 웃음이나 행복은 아줌마와 상관없는 말인 것처럼.
아줌마는 미국에 이민 온 지 삼 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 심장마비였다. 남겨진 것은 어린 아들과 낯선 나라였다. 돌아갈 형편이 되지 않아 연고도 없는 이곳에 남았다. 아들은 성실했다. 가게를 여러 개 운영했고, 한때는 베버리힐스에 살 정도로 수입이 안정됐다. IMF 때도 버텼던 가게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넘기지는 못했다. 한 가게가 경영난에 빠지자, 몇 달 사이 나머지 가게들도 연쇄적으로 문을 닫았다. 모든 사업이 파산하면서 부부 관계도 유지되지 않았고, 이혼과 함께 가족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갈 곳이 없어진 아들은 한동안 아줌마가 사는 노인 아파트에 머물렀다. 하지만,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더는 함께 살 수 없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있는 아들을 그렇게 내보낸 일은 아줌마에게 깊은 한으로 남았다. 속에 쌓인 이야기가 많아 보였지만, 그 마음을 엄마에게도 털어놓지는 못했다.
아줌마의 보험회사가 작년에 바뀌면서. 병원도 함께 옮기게 되었다. 새 병원 접수대에서 응급 상황 시 연락받을 사람을 적으라고 하자, 아줌마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썼다. 몇 달 전에 아들이 다른 주로 떠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버티기 어렵다며, 모아둔 돈도 없이 새로 시작해 보겠다며 갔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길을 떠난 사람을 위한 기도였는지, 남겨진 사람을 위한 기도였는지 나도 알지 못했다.
오랜만에 푸드 코트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아줌마는 손질하지 않은 머리에 무릎이 늘어난 바지를 입고 나왔다. 아줌마는 육개장을 천천히 저으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날 따라 얼굴이 더 수척해 보였다. 금전적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도와주고 싶어도, 아줌마는 아들이 사는 주소도, 은행 계좌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듯했다.
아줌마의 전화기는 늘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놓여 있다. 벨이 울리지 않는 날이 많아도, 전원을 끄지 않는다. 함께 살고 먹이고 입히던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아줌마의 마음은 여전히 아들과 둘만 남은 그때 머물러 있는 듯하다. 어눌해진 손과 흐려진 눈을 한 채, 아줌마의 생각은 아들에게 기운다. 낯선 곳에서 혼자 지내는 아들도 그 마음을 아는 듯, 가끔 전화로 안부를 전한다.
아줌마에게 더 견디기 어려운 건 돈을 보내지 못하는 현실이 아니라, 아들이 어느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아들이 빨리 자리를 잡고, 자주 전화해 엄마 나 잘 있다고 해 주기를 바란다. 그 말 한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관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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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수필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