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 에세이] 이젠 끝이다 “Nevermore, Nevermore”

2026-01-07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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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하면 서정시 ‘애나벨 리(Annabel Lee)’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는….” 학창 시절 시 낭송의 밤이면 빠지지 않고 울려 퍼지던 구절이다. 그를 생각하며 나는 필라델피아 노스 세븐스 거리의 사적지를 찾았다. 가난으로 평생 셋집을 전전했던 그는 네 곳의 거처만을 남겼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오래된 작은 벽돌집도 그중 하나다. 건물 옆 철책으로 둘러싸인 정원은 단정하게 가꿔져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다. 그 한가운데 이층 높이의 쇠 장대 위에 갈까마귀(The Raven) 동상이 서 있다.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르며 “Nevermore”라고 울부짖을 듯하다.

포의 대표작 ‘갈까마귀’ 속 화자는 사랑하는 레노어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긴 채 홀로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밀려오는 절망을 떨쳐내려 하지만 슬픔은 밀물처럼 되돌아온다. 그때 창가에 앉은 갈까마귀가 단호하게 말한다. “Nevermore.”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는 선언, 죽음 앞에서 인간을 짓누르는 한 단어다. 미국 초등학생들조차 흥얼거리는 이 말이 정작 그에게는 9달러의 원고료로 남았다는 사실은 허무하다. 저작권의 보호조차 없던 시대, 가난한 천재는 언제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문 앞 게시판에는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를 연상시키는 지하실 그림이 붙어 있다. 만취한 주인공은 애지중지하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눈을 도려내고 나무에 매달아 죽인다. 그날 밤 집은 화재로 전소되고, 이후 외눈박이로 생김새까지 닮은 또 다른 고양이가 나타나며 비극은 이어진다. 아내마저 도끼로 살해한 그는 시체를 지하실 벽에 숨겼다고 믿지만, 벽 너머에서 울려 퍼진 고양이의 괴성과 함께 범행은 드러난다. 실제로 포는 이 집에서 고양이를 길렀고, 고양이를 ‘요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어셔 가의 몰락’에서도 지하실은 죽음과 광기의 공간이다. 매들린은 죽은 듯 매장되었다가 폭풍우 치는 밤 되살아나고, 저택은 굉음을 내며 무너진다. 생매장과 부활, 붕괴.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이 모티프는 포 자신이 끝내 벗어나지 못한 절망의 그림자다.


길 건너편 아파트 벽에는 동그란 테두리 안에 그려진 포의 초상화가 있다. 서글픈 눈빛으로 자신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에는 ‘절름발이 개구리’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 포 문학의 영원한 주제는 곧 그의 삶의 기록이었다. 돌아오는 길, 도로 위에 ‘One Way’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되돌아올 수 없는 단 하나의 길. 차에 오르자 갈까마귀가 날개짓하며 따라오는 듯하다. “Nevermore, Nevermore.” 우리는 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이제 여기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의 영혼은 작품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처음에는 앵무새를 떠올렸다가 갈까마귀로 바꾸었듯, 깊고 음울한 울음은 그의 영혼과 닮아 있다. 덕분에 “Nevermore”는 영원히 포와 함께 남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주문처럼. “Nevermore, Nevermore.” 그러면 언젠가, 작품 속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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