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력발전소 붕괴, ‘맨 위’부터 철거 안 해… 매뉴얼 지켰나

2025-11-08 (토) 12:00:00 박은경·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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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괴 타워 구조물 곳곳 기둥 잘라
▶ 1층 철제 빔만 남은 가분수 형태

▶ 근로자들 25m 높이서 절단 작업
▶ 전문가들 “절차 안 지켰을 수도”

해체 작업 중 무너진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의 붕괴 원인을 두고 구조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당초 해체 계획서를 따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안전관리원 건축물 해체 매뉴얼(지침)에는 높은 구조물 해체 시 최상층에서 아래로 한 층씩 철거하도록 돼 있지만, 붕괴된 타워는 발파로 한 번에 부수기 위해 건물 곳곳을 절단하는 취약화 방식을 쓴 모습이다.

7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울산 남구 남화동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대형 보일러 타워가 무너진 것은 전날 오후 2시 2분쯤이다. 2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굉음이 들렸을 정도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한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보일러 타워는 1981년 준공 이후 40년가량 스팀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다가 2021년부터 사용이 중지된 철제 구조물이다. 총 6기 중 1~3호기는 2019년 해체 작업을 거쳐 완전히 철거됐고, 전날 붕괴한 5호기를 포함해 남은 4·6호기가 오는 16일 발파를 통해 모두 철거될 예정이었다.


동서발전이 해체공사를 발주해 HJ중공업이 시행사를 맡고, 코리아카코(발파업체)가 하도급을 받아 지난달부터 취약화 작업을 진행했다. 취약화 작업은 발파를 통해 한 번에 무너뜨리기 위해 건물 사이에 있는 기둥과 지지대, 받침대 등 일부 구조물을 미리 자르는 공정이다. 4호기는 취약화 작업을 완료했고, 사고가 난 5호기는 취약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6호기는 취약화 이전이었다. 4~6호기 모두 1층은 구조물 대부분이 철거돼 철제 빔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 사고 당일에도 작업자가 아침부터 조를 나눠 서로 다른 지점에서 구조물 일부를 절단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사고 직전 25m 높이의 타워 6층에 올라가 산소절단기 등 공구로 기둥 등 구조물 일부를 절단하고 있었다. 뼈대를 두고 듬성듬성 살이 잘려 나간 모습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이 같은 구조가 붕괴의 주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해체작업 중 한쪽에 하중이 더 많이 실리면서 무게 중심이 흔들려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소방 당국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구조물 기둥 등을 다 자르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흔들리거나 기우는 여러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나무를 벨 때 도끼질을 더 많이 한 쪽으로 무너지듯, 보일러 타워가 붕괴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통상 대형 구조물은 해체 시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한 층씩 철거한다. 국토안전관리원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작성 및 검토 매뉴얼’에는 “높은 구조물 해체 시 최상층부터 한 층씩 해체하고 슬래브나 보와 같은 수평 구조물을 해체한 뒤 기둥과 같은 수직 구조물을 해체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붕괴된 타워는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취약화 방식을 써 아랫부분이 철골만 남긴 채 잘려 나간 모습이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은 “철거 작업을 하기 전 해체계획서를 마련하는데 그 절차대로 작업이 진행됐는지 불분명하다”며 “작업대로 했다고 한다면 그 해체작업계획서가 적정하게 수립됐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일러 타워는 일반 건축물로 분류되지 않는 공작물이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철거계획서 신고·허가 대상도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 전 중심이 흔들려 한쪽으로 무게가 실렸더라도, 주변에서 타워가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쇠줄 등 안전설비·장치가 제대로 갖춰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철거 기간을 줄이기 위해 이를 생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찰도 국가수사본부, 고용노동부 등 유관 기관과 협조해 작업 전 제대로 된 안전 관련 조치가 이뤄졌는지 집중 수사하고 있다.

<박은경·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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