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엔서도 ‘美우선’ 역설한 트럼프…보호·고립주의 훈계조 연설

2025-09-23 (화) 11: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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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만의 유엔총회 연설서 對유엔 불신 드러내며 자기 정책 우월성 강조

▶ 관세정책은 ‘약탈당한 美의 방어수단’ 강조…기후변화 부정 재확인
▶ 북핵 위협 언급 안해…중·러에 맞선 동맹들과의 안보공조도 언급 없어

유엔서도 ‘美우선’ 역설한 트럼프…보호·고립주의 훈계조 연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2019년 이후 6년 만(2020년은 화상연설)에 오른 유엔 총회 기조연설 연단에서 또 다시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해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내치(內治)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한편 국경, 무역, 이민 등 분야에서 자신의 고립주의적 정책의 우월성을 부각하면서 마치 훈계하듯, 다른 나라들이 이를 따르고 협조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국제 사회 협력의 상징인 최상위 외교 무대인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유엔에 대한 불신을 한껏 드러내는 한편, 마치 국내 정치 유세장을 방불케하는 연설을 1시간 가까이 내놓았다.


특히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 좌파 진영의 실패를 자신이 짧은 기간에 바로잡은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이익 최우선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점을 미국 유권자들에게 호소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연설을 시작하면서 "내 첫 임기에 번영하고 평화로웠던 세계를 향해 이 웅장한 홀에 서서 연설한 지 6년이 지났다"고 운을 뗀 뒤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세계와 미국은 위기와 재난의 연속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그러나 오늘 내 행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가 됐으며, 그 어느 나라도 근접조차 하지 못한다"며 "미국은 지구사의 어느 나라보다 가장 강력한 경제, 국경, 군대, 우정, 정신을 지닌 축복받은 나라다. 지금이 진정 미국의 황금기"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자신이 전 세계의 분쟁 7개를 종식했다면서 유엔의 역할을 노골적으로 폄훼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전쟁을 막고 끝내는 일에 너무 바빠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유엔이 우리를 위해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엔의 목적은 무엇인가. 유엔은 엄청난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공허한 말뿐이고 이는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 등으로 유엔의 존재 이유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농담조로 얘기하긴 했지만, 연단의 텔레프롬프터가 고장 났다거나, 자신과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탄 유엔본부의 에스컬레이터가 중간에 멈춰 섰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는 오늘 더 안전하고 번영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려는 총회장의 모든 국가에 미국의 리더십과 우정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왔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모든 국가가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세계 질서를 해치는 적대 세력으로는 우선 이란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꼽았다. 특히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가자지구 전쟁의 출구 해법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선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에게 잔혹 행위에 대한 지나친 보상이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과 관련,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는 중국·인도를 지목하며 "전쟁의 주요 자금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러시아산 에너지를 구입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향해서도 "러시아가 전쟁을 끝낼 합의 준비가 안 됐다면 미국은 강력한 관세를 부과할 준비가 완벽히 돼 있다"며 "러시아 에너지 구매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취임 후 취하고 있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대규모 추방 작전 및 국경 봉쇄 등 강경한 이민정책을 거론, 세계 각국의 동참을 권고했다.

서유럽의 불법 이민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지목한 뒤 "이민 정책과 그들의 자살적인 에너지 정책은 서유럽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 위기론에 대해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했으며,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해선 "완전한 녹색은 완전한 파산을 의미한다"고 비판하면서 석유 및 가스 시추와 원자력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에너지 정책을 따를 것을 제안했다.

글로벌 무역 체제를 뒤흔든 관세 정책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모든 국가와 활발한 무역 및 상업 교류를 원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돕고자 한다"면서도 "하지만 공정하고 상호적이어야 한다. 규칙을 준수한 국가들의 공장은 모두 약탈당했다"며 관세가 다른 나라로부터 '약탈'당한 것에 대한 방어 수단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는 자신에 앞서 연설을 마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잠시 마주쳤다면서 "과거 브라질이 우리나라에 불공정한 관세를 부과했다는 걸 믿을 수 있나.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관세로 그들(브라질)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지속하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확고히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는 "나는 대통령으로서 항상 주권과 미국 시민의 권리를 수호할 것이다. 그래서 브라질은 형편없이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게 매우 유감"이라며 "그들은 우리와 협력할 때만 잘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이 그랬듯이 우리 없이 그들은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날 연설의 대부분을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세계 질서 주도 의지를 밝히는 데 할애한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 협력 의제의 하나로 생물학 무기 개발 종식 노력에 전 세계가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오늘 나는 내 행정부가 생물학 무기 금지협약 이행을 위한 국제 노력을 주도할 것이라고 발표한다"며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검증 시스템을 선구적으로 도입해 세계 정상들과 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에 대해 "세계 1위의 테러 지원국이 가장 위험한 무기(핵무기)를 갖도록 허용할 수 없다"며 이란의 핵보유 저지에 대한 의지를 밝혔지만 그보다 더 고도화한 북핵 위협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또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다극화하려 해온 두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전쟁 관련 맥락에서 쓴소리를 하는 데 그쳤고, 동맹국들과 함께 중·러발 안보 위협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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