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7일,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과 러시아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2024년 6월 19일에 체결된 이 협정은 2000년 이후 양국 간 최초의 공식 군사 협정으로, 제재 강화와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북한에게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상징적인 전략적 지렛대를 부여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협정이 고립이나 봉쇄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보여주며, 다극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재정립하려 한다는 움직임을 시사했다는 점이다.
협정에 포함된 상호방위 조항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국’이라는 낙인을 벗고, 국제 규범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주권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야심을 보여준다. 북한은 2024년 약 11,000명의 병력을 러시아에 파견한 데 이어, 2025년 초에는 6,000명을 추가로 보냈다. 여기에 더해, 쿠르스크 지역으로 6,000명의 추가 파병도 약속한 상태다. 북러 간 무기 이전과 합동 군사 협력에 대한 보도는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행위가 국제 제재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유엔 헌장 51조를 근거로 자국의 조치는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히 서구 중심의 법적 해석에 도전하는 것을 너머, 기존의 지정학적 질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 협정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북한 경제의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 계속되는 대북 제재 속에서도 북한은 러시아로의 병력 및 노동력 파견을 통해 연간 약 5억 2,560만 달러 규모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팬데믹 이후 회복기에 접어든 북한 경제에 매우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되고 있다.
2024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과 한국의 대북 정책은 크게 변화했다. 한국에는 이전 정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와의 연계와 군사 억제 중심 노선과는 달리, 대북 외교를 보다 중요시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한편,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쿼드(Quad)•오커스(AUKUS) 등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연대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겨냥한 ‘역내 포위망 강화’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을 하면서, 미국 외교 정책은 경제 민족주의와 대중 전략 경쟁 중심으로 다시 재편되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을 철회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전쟁 종식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교착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지난 6월 25일 한국전쟁 75주년과 시기를 같이한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추가 패트리엇 미사일 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유럽의 집단방위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다시 한 번 확인됐고, 이는 유럽방위백서(Readiness 2030)와도 방향을 같이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자 외교보다는 군사력 중심의 양극 질서로 회귀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중동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인해 무력 충돌이 벌어지며, 세계 불안정성에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세 상황은 북러 협력의 전략적 계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는 2024년 12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면서 중동 내 영향력을 크게 잃었고, 지난 1월 이란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을 체결했지만, 상호 방위조항은 포함하지 않았고, 분쟁 발생시 서로의 적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북한에게 이 차이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 있다. 러시아가 이란에게는 제한적인 안보 보장만 제공한 반면, 북한과는 강력한 상호 방위 조항을 포함한 협정을 맺었다는 점은,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전개됨에 따라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북한은 이 차이에 주목하며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러시아에 각인시키고, 반서방 연대 내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 균열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근본적인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동맹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지역의 지속 가능한 안정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크라이나, 이란의 사례는 핵무기를 포기했거나 보유하지 않은 대가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란-이스라엘처럼 핵보유국 간 충돌은 핵 억지력만으로 갈등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핵 억지력은 더 이상 절대적인 안보 보장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외교적 생존을 위한 핵심 수단임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전략적 전환이다. 안보를 억지력 하나에만 의존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신뢰 구축과 다자 협력, 그리고 ‘탈핵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안보 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위험을 줄이고, 권력의 개념을 재정의하며, 평화를 위한 현실적인 해법으로서의 외교를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
김연희 서강대학교 게페르트국제학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