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따로 따로, 또 같이, 함께 한 포르투갈·스페인

2025-06-13 (금) 07: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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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따로, 또 같이, 함께 한 포르투갈·스페인
단체 패키지여행은 무엇을 보고,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을지를 해결해 주니, 우리는 누구를 만나, 어떤 것을 나눌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한스여행사의 똘똘이 팀장과 함께 마음의 여유가 있는 어른들이, 틈틈히 자유시간을 누리며 12일 동안 따로, 또 같이 지내는 단체와 자유여행의 좋은점을 섞은 여행을 즐겼다.
그 시대를 지배했던 나라에 따라 이루어진 궁전, 광장, 성, 정원, 박물관, 성당, 교회, 사원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서도 나름대로 즐긴다. 문화란 문명으로 이룬 물질 문화에 예술 및 정신적 산물이 보태진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보다 잘 산다고 경제대국이 문화대국은 아니다. 그들의 문화는 깊고 품위가 있다. 그런 자격지심에서 그만 오라는데도 비싼 관광세와 입장료를 내면서 우리는 미친듯이 유럽으로 떠난다.
플라스틱 일회용품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릇들과 벽까지 도자기와 타일로 구웠고, 우체통, 주차금지 쇠기둥, 가로등은 주물로 튼튼하고 제대로 만들어서 제대로 대접 받는 기분이었다.

무뚝뚝하고 내성적이지만 한번 사귀면 변함없을 포르투갈은 우울하고 슬픈 전통민요인 파두와 어울린다.
유럽의 부엌이라는 스페인은 먹거리가 풍부하다. 도토리를 먹인 흑돼지 햄 하몽을 사오고 싶었지만 반입불가라기에, 종이장 처럼 얇게 썰어야 제 맛인 하몽과 메론을 보이는대로 먹었다. 구수한 빵을 올리브나 발사믹 포도식초에 찍어먹고, 튀기기 보다는 굽거나 올리브 기름에 볶는다. 디저트도 버터나 설탕을 적게 넣어선지 머리가 띵하게 달지 않고, 포도주 인심은 후하고, 대부분 건강하고 날씬하다.

한스여행사의 가이드는 대부분 A급인데, 이번 가이드는 최고였다. 가이드는 같은 스케줄이지만, 각각 다른 여행팀에 맞추는 전문가적 센스가 필요하다. 바나나가 많아서 하와이로 알았다는 그는 스페인 시민권자로 40이 넘은 두 아이의 아빠인데도, 한국인으로 잘 컸다고 흐믓해하며 할머니, 누나, 형님들의 귀여움과 사랑을 담뿍 받으며, 제각각의 질문과 요구를 기분좋게 해결한다. 버스가 출발하면 몇몇은 반짝이지만, 대부분 꿀잠에 빠지니 중요한 설명은 아침인사와 호텔에 내리기전에 해주고, 붐비는곳은 오전에 일찍 다니며 틈틈히 맛있는 간식으로 우리를 줄 세운다.



1. 포르투갈, 땅끝 마을, 운하 마을 아베이로, 포르토, 파티마 성지
대서양 항해 시대를 열었던 최서단 땅끝 마을은 바람부는 언덕에 낡은 등대와 함께 한국과 같은 38도선에 있고, 타일을 실어 나르던 작은 운하 마을에는 지금은 멈춰버린 커다랗고 쓸쓸한 타일 공장과 한적한 산책길은 조용하다. 포르투갈 포도주 산지인 포르토는 술 익는 냄새로 취하고, 병마개로 쓰이는 코르크판에 타일을 얹은 냄비받침은 볼수록 멋져서 선물로 인기가 짱이다. 가톨릭 성모 성지중 하나인 파티마 대성당에서 저녁마다 촛불 미사가 있다는걸 알고 두근거렸다. 신앙심 깊은 마르꼬, 레지나 부부와 함께 초를 들고 여러가지를 욕심 많게 바라며, 세계인들이 모여 십자가와 성모상과 함께 광장을 돌면서 묵주기도를 드린다. 주변 가게나 호텔 이름이 성마리아, 성요셉, 성베드로 등등이니 여기선 죄 짓기 힘들고 계속 살기엔 지루하며 심심할듯 싶었다.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돌아가셔서 가는곳 마다 추모 미사가 있고 여행 중에는 장례식도 있었다.


2.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계란 타르트 벨렘빵, 대서양 베나길 동굴 보트 투어
쾌속 보트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하늘이 뻥 뚫린 동굴안에도 이리저리 들어갔다 나왔다하고, 파도가 뺨을 때리는 사람의 옆 모습 바위에는, 제일 밉상인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데 요즘엔 트럼프 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리스본 근교의 제로니모 수도원에서 1837년에 시작된 포르투갈 명물빵인 에그타르를 맛보았다. 수도원에서 풀 먹이고 남은 달걀 노른자로 만들었는데 몇 백년 된 원조답게 맛있다. 굽는 주방이 다 보이고 돈을 무지무지 쓸어 모은듯 집 번지수가 5개나 이어져있다. 예약 주문한 따뜻하고 바삭한 에크타르를 공원에서 가이드가 딱 한개씩 나누어 주는데 황홀한 맛이다. 아쉬워 남은 2개에 눈독을 들이니 그건 운전기사 몫이란다..


3. 스페인 세빌, 스페인 광장 마차투어, 플라맹고 댄스, 지중해의 백색도시 미하스
스페인 남부의 안달나게 만드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빌은 카르멘, 피가로의 결혼, 세비야의 이발사등 오페라의 배경이 되었고, 모스크 사원을 개조한 세비아 대성당에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롬버스의 유언에 따라 가마 메듯이 관을 공중에 들고있는 왕들의 심통맞은 얼굴도 흥미롭다.
플라맹고 집시들의 댄스는 오페라를 살짝 넣어선지, 아르헨티나의 탱고보다는 남녀가 덜 끈적거리고, 브라질의 삼바보다는 덜 벗었는데, 포도주와 과일을 섞은 샹그리아를 마시며, 기타 반주에 맞춰 정열적인 카르맨의 주름진 치마는 휙휙 돌아가고, 구렛나루가 느끼하게 잘 생긴 호세들의 구두발 소리에 빠져든다.
스페인 광장이 있는 공원은 갖가지 고운 꽃과 나무들이 싱그럽다. 그 옛날 귀부인처럼 따그닥 따그락 윤기 흐르는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이제는 가끔씩 열린다는 투우장도 둘러본다.
지중해의 백색도시 미하스는 그리스의 산토리니, 이탈리아의 아말디 해변, 한국의 부산 영도같은 바닷가 산동네인데, 예전에는 어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좁은 골목과 작은집들을 이제는 앞 다투어 보러온다.


4. 시간이 멈추고 전기도 나가 자연으로 돌아간 톨레도,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기타 연주곡으로 듣던 알함브라궁전은 주황빛으로 포근하게 안아준다. 유럽의 다른 궁전보다 덜 화려하지만, 이슬람에 따라 사람이나 동물 대신에 장식한 꽃이나 반복적인 무늬의 잔잔함이 오히려 질리지 않고, 온갖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서 진한 오렌지꽃 향기에 취한 황제와 황후가 되어본다.
시간이 멈춘 산꼭대기 중세도시 톨레도에서는 전기가 나간 에스컬레이터를 계단 삼아 끝없이 올라가니, 성당 앞 계단과 엘그레꼬의 명화가 있다는 산토토메 교회 앞에는 신부님, 직원, 동네 주민, 강아지까지 모두가 나와서 어떻하면 좋을까 각자 떠들다가, 중세시대로 돌아가 해 있을 때 얼른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전기가 없으니 인간이 만든 컴퓨터, 인터넷, 기차, 전기차, 쎌폰 등 모든것은 허무하고 쓰잘데기가 없다.
처음엔 어느곳 일부분인줄 알았고 금방 복구된다고 했다. 그래선지 가족들은 안부전화도 없다. 포르투갈,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까지 정전이고 인터넷과 전화도 먹통이다. 내일을 걱정하는 가이드와 여행사 팀장은 잠 못이루고 자동주유기가 멈춰서 기름통을 들고 기름을 넣으러 가야하는 운전기사도 울상이다.


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모나리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은 다행히 열었고 정전사태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대도둑 영국 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와는 달리 왕가의 재산으로 매입하거나 왕실 소속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있다. 마네와 피카소에게 영향을 준 고야의 그림중엔 그 당시엔 너무 야해서 관람객에 따라서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를 다르게 보여준다. 미술관 입장권의 제각각 다른 손 그림이 있는 이유는, 옛날엔 손을 그리면 가격이 비싸서 대부분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딴청을 피우고 있다.
가장 관심있던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깊숙히 안쪽에 있다. 프랑스 루브르에서 떠밀려 가며 흐릿하고 작은 모나리자에 실망했는데, 여기는 눈썹도 있고 배경도 또렷하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진품이라고 인정하면 프라도 미술관 모나리자로 몰려올거라 계속 보류중이라는데, 어쨌건 참으로 모나리자는 참 이쁘다.


6. 가우디의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몬세랏 베네딕토수도원 검은 마리아 상, 아쉬운 헤어짐
마드리드 기차역은 정전 사태로 밀린 손님을 치르느라 북새통이다. 고속 열차를 타고 3시간 만에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북동부 프랑스와 인접한 까탈루시아 주라서 사람들이 까탈스럽다고 한다. 예전엔 수로였던 길고 긴 람블라스 거리 끝에는 콜롬버스가 서있다. 람블라스 광장의 가우디의 가로등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꼴랑 2개만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햇빛과 흐르는 곡선을 철공소 아들답게 철물을 이용한 건축가 가우디. 그가 심혈을 기울였고 제자들에 의해 아직도 공사중인 성가족 성당은 자연광으로 부드럽게 빛났고 기둥은 나뭇가지같다. 직선은 없이 오직 곡선으로 이루어진 구엘공원은 부유층 신도시 주거단지였는데 2채만 분양되어 폭삭 망해서 후원자 가족은 파산했다. 타일로 모자이크한 도마뱀, 타일 벤치, 뱀 모양의 언덕길은 세련되었고, 그라시아 거리의 카사밀라 2층 카페에서는 건너편의 카사바르요를 볼 수 있다.

지중해 바닷가에서 3시간 전에 주문했다는 30인분 커다란 후라이펜 볶음밥 파에야에 신이 났다. 골고루 나눠 주고 바닥에 있는 누룽지를 요즘엔 탄거를 꺼린다며 가져가서 우리는 진심으로 서운하고 화가 났다.

바스셀로나 북쪽 몬세락에 있는 톱니 산속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은 가우디에게 뿌리가 되었고, 성가족 성당은 나무가지라고 한다. 건너편 바위언덕의 산미켈 십자가 전망대까지는 온 가족이 걷기에 좋고, 유명한 소년합창단은 해외공연 중이라 아쉬웠다. 오랜 세월에 검게 변한 블랙마리아상 손을 만지며 기도하면, 수태의 은총과 소원을 이뤄준다는데, 만지는 입장권이 마감이라 1층에서 바라보고 아쉬워하니 친구가 마리아상을 선물로 준다. 특별한 은총으로 누구든 낳기만하면 언니들이 다 키워준다하니, 신부님께 축성을 받아서 누구라도 만질 수 있게 해야겠다. 다음날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뿔뿔히 헤어지며 아쉽지만 건강하게 지내다가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남을 기도해 본다. <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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