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미국의 재계 총수들은 종종 익숙한 불평을 늘어놓으며 정부 정책에 거리낌 없이 비판을 쏟아냈다.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의 최고경영자였던 이반 세이덴버그는 “정부가 사실상 경제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손을 뻗으면서 시장에 불확실성을 주입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시스코 시스템스의 전임 최고경영자(CEO)인 존 체임버스도 “경제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며 거들었다. 이들의 발언은 모두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나왔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일생에 한번 경험할까말까한 글로벌 재정위기로부터 미국 경제를 건져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완전고용과 저인플레의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불확실성의 쓰나미를 몰아왔다. 깜짝 발표 후 연기되었던 관세는 재가동됐고 관세율마저 두 배로 늘어났다. 이처럼 종잡기 힘든 관세 정책에 재계 지도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켄 그리핀, 래리 핑크, 제이미 다이먼 등 몇몇 거물급 인사들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 물론 일론 머스크도 이들 소수자 대열에 전격적으로 합류했다.
과거의 경우 재계 지도자들은 기업세 인상에 늘 볼멘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관세 형태로 부과되는 새로운 세금에 기업총수들은 대체로 침묵했다. CEO들 가운데 상당수는 수입 상품에 매겨진 관세 때문에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말조차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새로 50%의 관세가 붙는 철강을 예로 들어보자. 이처럼 높은 관세로 철강산업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업과 건축업 등) 수입 철강을 사용하는 산업체들은 철강산업 분야의 일자리 한 개가 보전될 때마다 175개의 일자리를 위협받게 된다. 이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나 건축회사 최고경영자들의 불평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전혀 듣지 못했다.
예산안을 둘러싼 위선에 관해 생각해라. CEO들은 오래 전부터 예산적자의 위험성에 관해 떠들어댔다. 그럼에도 향후 10년간 국가부채에 5조 달러의 적자를 추가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예산안에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CEO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의회예산처는 관세로 인한 향후 10년간의 추가 재정적자액을 ‘고작’ 2조4,000억 달러로 추산했다. 적자추산액을 낮추기 위해 하원 공화당이 회계조작을 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일부 감세조항의 시효를 4년으로 못박아 향후 10년간의 적자 전망치를 축소하는 회계상의 꼼수를 동원했다.)
예산안의 수치를 꼼꼼히 살펴보면 재정적자를 줄일 유일한 방법은 메디케어와 국방비 등 가장 많은 예산을 소요하는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2017년도에 단행된 트럼프 감세를 종료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크고, 아름다운 예산안’은 메디케어 지출의 고삐를 당기지 않은 것은 물론 국방비를 증액하고 감세규모도 대폭 확대했다.
업계는 “경제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를 미치는” 현기증을 유발할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예산안에 격분해야 마땅하다. 세금에 대한 최선의 관행은 간단하고 공정한 룰을 유지하고 이들을 모든 납세자들에게 동등하게 적용해 왜곡, 우회와 회계조작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에는 팁 혹은 초과근무수당에 과세하지 않고 노인들과 자동차 대출이자에 대해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따라서 연소득이 5만 달러인 웨이터는 세금감면을 받지만 식기세척을 담당하는 주방직원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초과근무수당을 제공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세금감면을 받지만 이들에 비해 급여가 적어도 초과근무수당을 신청할 수 없는 직종의 종사자에게는 동일한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소득을 팁과 초과근무수당으로 재분류하는 근로자들의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비당파적 기관인 택스 파운데이션이 지적하듯 이러한 혜택은 “시행될 경우 수백 쪽의 국세청(IRS) 해설지침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조건과 가드레일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 복잡한 작업을 해내야 하는 IRS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체 인력의 40%가 잘려나간 상태다. 이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법망을 빠져나가는 세금 사기가 기승을 부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택스 파운데이션은 “새로운 규정과 이를 준수하는데 따르는 비용이 많은 경우 잠재적인 세금혜택보다 클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지금의 미국 경제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정치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과 마텔 같은 개인기업을 상대로 관세위협을 가한다. 지난 목요일, 그는 머스크 소유 업체들과 체결한 정부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한 특혜를 원하는 기업 총수들은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직접 요청하라고 말한다. 이번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재계 지도자들이 “대통령과 만나고 싶어하고 백악관에 오고 싶어 한다”고 자랑스레 밝혔다.
트럼프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수억 건의 개별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크고 복잡한 자유시장 시스템이 아니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상점이다. 그는 “내가 상점의 주인”이라며 “나는 이곳에서 장을 보는 고객들이 지불해야 할 물건의 가격을 책정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기업 지도자들은 -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아부하는 - 과거 제 3세계 독재자들을 대하던 방식으로 미국 대통령과 거래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큰 반대 없이 이같은 새로운 모델에 적응하고 있다.
미국 우파의 지적 대부인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의 새 전기가 나왔다. 그의 친구였던 필자는 언젠가 그가 했던 묘한 말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스위스를 꼽았다. 이유를 묻자 그는 스위스야말로 진정한 자유시장 민주주의 국가이고 국민에게 정부가 정말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버클리는 “평범한 스위스인에게 너희 대통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다수가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말 할 필요없이, 버클리의 꿈은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악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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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