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는 이야기] 결정장애 (決定障礙)

2025-05-23 (금) 07:40:56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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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피어의 햄릿에 보면 인류가 애지중지하는 명대사가 나온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살고 죽느냐의 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내 결단과는 아무 상관없이, 때 되어 태어났고 때 되면 가야하는 인생인데 내가 그런 생사를 두고 심각하게 고뇌할 필요는 없잖은가. 공연히 섹스피어 때문에 인류는 생사를 고민하기 시작한 셈이다. 오히려 햄릿 증후군은 그런 실속 없는 주제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서 더 많이 발견하고 경험한다.

한때는 너무 결정이 빨라서 실수가 많았다. 특히 젊었을 때의 신속한 결정은 무모하기까지 했고 그런 무모한 결정이나 결심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주범이 되어 이제는 사소한 일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 것이다.

“바보”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인가.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두 말 할 것 없이 주어진 인생을 거의 다 살고 이제는 삶의 후반부를 서성이면서 졸지에 바보가 되고 사소한 일도 결정을 잘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의 고전적 결정장애는 차라리 애교겠지만 인생은 수없는 결정의 기로에 놓인다. 혼자서는 어떤 선택도 결정도 잘 하지 못하고 혹시 실수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 하며 자기 확신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는 나이 지긋해지기 시작하는 남성과 여성에게서 흔히 발견하는 증후군이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여자 안에는 남성호르몬이 많아지고 남자 속에 여성호르몬이 증대한다는 말은 과학이며 진리임을 깨닫는다.

정채봉이라는 시인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꾸물거린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불러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 나오는 일이 없습니다. 망설이고 꾸물거리다 끝나는 거예요.” 확실히 일리 있는 지적이 아닌가. 꾸물거리는 사람에게 이런 지적을 하면 그런 꾸물거림이 신중한 모습의 또 다른 표현임을 강조하지만 90%가 게으름의 변명이다.

물론 갈등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꾸물거림, 다시 말하여 결정장애로 인해 얼마나 많은 착오와 실패를 경험하는지 모른다.

골프선수로 유명한 바비 존스가 있었다. 그는 그랜드 슬램의 대기록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조지아 공대를 거쳐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받았고 에모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까지 되었다니, 그는 숫한 결정의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소중한 결정이 하나 있었다.

그가 골프 선수로 출전한 1925년 US오픈 마지막 라운드까지 그는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고 우승이 눈앞에 있었다. 그때 공을 치기 위해 골프채를 조정하는 순간 자칫 실수해서 공을 미세하게 건드렸다. 골프에서는 공을 건드리면 벌점을 부여한다.

물론 그 장면은 너무 순간이어서 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바비 존스는 이 일을 보고했고 그 벌점으로 결국 마지막 적수와 동점을 이뤘고 마침내 우승을 놓쳤다는 안타까운 일화다. 그는 찰나에 결정을 내렸다.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대회의 실질적인 승자가 되었다.


모든 결정은 0.3초 내에 이뤄진다는 설이 있다. 0.3초가 아니라 그냥 3초래도 그 결정은 순간이요 찰나일 것이다. 거의 선택과 결정이 동시에 이뤄지는 결과다.

그러나 많은 인생이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꾸물대고 고뇌하고 갈등하다가 그렇고 그런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살아가는지 모른다. 하지만 결정 장애가 반드시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소의 다툼과 꾸중은 동반하겠지만 인간사는 그런 장애 때문에 울고 웃는지 모른다.

이제 한국 국민들은 6월 3일, 결정의 순간, 그 찰나 앞에 섰다. 지독한 결정 장애로 손가락에 관절염이 올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옳은 결정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앞에 놓고 모든 손가락이 나라를 찾는 시금석들로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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