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리 멘탈(Mental)

2025-05-02 (금) 0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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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을수록 정신력이 약해진다. 요즘 쓰는 흔한 말로 멘탈이 유리급이다. 조금만 건드려도 깨지고 부서진다. 누가 무슨 말을 하나 염려와 불안이 스멀스멀 돌아다니고, 별 일도 아닌데 삐지고 토라진다. 그러다가 문득 오랜 옛날 일에 매달려 아파하고 회개한다.
한 가지 일에 매진하며 수십 년 영혼을 쏟아 넣었던 삶을 접은 후, 인생 황혼을 열고 은퇴를 했는데 이상스레 멘탈은 고장 난 듯하다. 얼마 전까지는 은퇴와 현역을 넘나드는 정신상태였다. 일에서 손을 놓았는데도 여전히 현역에 머물러있는 착각이 있었다. 그 착각에서 깨어나면 가슴이 저린 듯 아파왔고 마음이 허전해지며 심지어는 눈가가 촉촉해지곤 했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 유리 멘탈 증세였다.

John Wick에게 지인이 물었다. “아니 당신은 벌써 은퇴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여기 있어요?” 그때 그가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지금 은퇴하는 중(I’m retiring)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대사인가. 나는 이 대사를 한동안 곱씹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아쉬움조차 유효기간이 지났다.

은퇴 전에는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대수롭지 않았던 일들이 은퇴 이후에 돌연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황혼의 삶을 지배하려 들 때가 많아졌다. 멘탈이 너무 투명해지고 얇아진 까닭이다.
이런 말이 있음을 기억한다. “어제의 비로 오늘의 옷을 적시지 말고 내일의 비를 위해 오늘의 우산을 펴지 말라.” 기막힌 명제다. 그러나 내가 지금 사는 모습을 이 글에 비추어보면 전혀 반대의 삶을 사는 게 약여(躍如)하다. 어제 내린 비가 오늘을 사는 나를 흠뻑 적시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비를 위해 우산을 펴지만 어느새 내일 내릴 비로 가슴이 흥건하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이렇게 유리알 인생이 되었는가.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이 비슷하게 사는 친구에게 헛일 삼아 문의를 했더니 친구가 구시렁거리며 답을 주었는데 요약하자면 자기도 그렇다는 얘기다. 늙음이 같은데 사는 모양이 무에 그리 다를 것인가. 밤에 잠을 잘 때도 불면이 많아졌다. 그 긴 불면의 시간에도 쓸데없고 영양가 없는 추억으로 이리저리 뒤척인다. 그리고 잠 못 이루는 내 모습을 그때의 모든 추억들이 달려와서 보았으면 싶다.
유독 지난 겨울은 춥고 길었다. 그래도 봄은 왔다. 몸은 쇄했어도 봄을 느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겨울이 갔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봄에 죽는 노인들이 많다는 통계가 있다. 역설이긴 해도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마음의 기지개도 조심스레 펴고 심호흡도 조심스레 하는 편이 좋다. “하루를 넉넉하게” “좀 더 많이 웃으며 살자” 다짐을 하지만 유리 같은 멘탈이 금세 또 깨질지 모르니 유의할 일이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선별해서 작작 만나는 것이 좋다. 황혼에 들면 너 나 할것 없이 넓은 마음보다는 바늘 꽂을 틈도 없이 좁은 마음이 된다. 웃자고 하는 말을 죽자는 말로 알아듣고 녹지 않는 앙금을 만들기 십상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가 차를 타자마자 봄날을 만끽하려 팝송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봄에 어울리는 가곡을 먼저 틀어버리는 바람에 서로가 약한 멘탈을 깨부쉈다는 일화가 있다. 황혼의 멘탈은 유리와 같다. 강철이었던 멘탈을 그리워하기는 해도 어느새 유리로 바뀐 것을 잊지 말자. 전혀 깰 일이 아닌데도 여기저기 지나가는 사소한 일까지 끌어당겨 마구 깬다.

공연히 화창한 날씨도 뭔가 허전해진다. 그렇다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좋은가. 아니다 그건 더더욱 아니다. 책을 펴도 5분 이상을 읽기가 힘이 든다. 그냥 읽으면 될 터인데도 왜 이렇게 썼을까, 이 문장을 대체할 다른 생각을 없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 가뜩이나 연약한 유리를 지탱하기 어렵다.

하여, 유리 멘탈을 간수하기 위해 나타난 현상이 있다. 무사무념(無思無念)이다. 우리말로는 “멍” 때리기다. 그러다가 투명한 유리 밑으로 다가오는 먼 나라를 그리워한다. 무엇일까.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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