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가정의 달, 5월에

2025-05-01 (목) 08:40:52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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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모성애와 효심의 상징인 우렁이와 가물치를 떠올리곤 한다. 우렁이는 자기 몸안에 40~100개의 알을 낳고 알이 부화하면 새끼들은 제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하는데 어미 우렁이는 한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다주고 빈 껍데기만 흐르는 물길따라 둥둥 떠내려 간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가물치는 수 천개의 알을 낳은 후 바로 눈이 멀게되고 그 후 어미 가물치는 먹이를 찾을 수 없어 배고품을 참아야 하는데, 이때 쯤 알에서 부화되어 나온 수천마리의 새끼들이 어미 가물치가 굶어 죽지 않도록 한 마리씩 자진하여 어미 입으로 들어가 어미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며 어미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고 한다.

그렇게 새끼들의 희생에 의존하다 어미 가물치가 눈을 다시 회복할 때 쯤이면 남은 새끼의 수는 10%도 생존치 못하고 대부분의 어린 새끼 가물치는 기꺼이 어미를 위해 희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물치를 “효자 물고기”라고 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우렁이와 같은 모성애를 받고 살아 왔으면서도, 가물치와 같은 효심의 마음과 행동을 얼마큼이라도 해 왔는지 생각해 보게한다. 그란데 문득, 언젠가 지인이 들려준 서글픈 사연이 생각나서 여기 옮겨본다.

어느 남자가 세상 짐 다 짊어진 듯 무거운 마음으로 혼자 마트를 돌며 이것저것 장을 봐 와서 서툰 솜씨로 요리를 해 늦은 밤, 상을 차리더니 TV 위에 있는 아내 사진을 상 앞에 올려놓고는 “여보!. 잘 지내지? 거기에선 남편 자식 챙기느라 애쓰지 말고 편히 쉬어~.”

“살았을 땐 당신이 차려준 상을 이젠 내가 차리네 그려! 그리움 때문인지 액자 속 아내 얼굴만 매만지던 남편은, 살아있을 때 따스한 밥상한번 차려주지 못했던 무심한 남편이었던 것이 미안해서 소주잔을 눈물로 채워가다 낮에 자식들에게서 온 문자를 꺼내어 읽어 내려간다.

“아버지!~. 부부 동반 해외여행이라 빠질 수가 없네요.” “아버님 죄송해요. ㅇㅇ아빠 미국 출장 따라 갔다 올게요.” “할아버지~. 아빠 외박한 것 때문에 밤새 싸우더니 엄만 짐 챙겨 나갔고 아빠는 아직도 자고 있어~.” 남자는, 자식새끼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애미 죽고 첫 기일인데⋯ 쯧쯧~.

턱없이 아파 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애꿎은 술잔에 푸념을 담는다. “여보~. 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더 있다가 오지 왜 벌써 오냐고 구박하는 건 아니지?” 아내마저 떠나버린 텅 빈집에서 혼자 어떻게 버텨왔는지~ 남자는 며칠 전 의사가 한 말을 곱씹어 본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 4기입니다. 수술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날밤,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앨범들을 펼쳐놓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들을 조각조각 맞추며 밤을 꼬빡 세운 다음날, 막내에게 전회를 건다.
“ㅇㅇ냐? 이 아비가 너희한테 할 말이 있으니 형들한테 연락해 이번 주말에 집에 한 번 들리거라~.”

일요일 저녁, 불편한 마음을 얼굴에 그려놓은 세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남자는 “나도 이제 네 엄마 곁으로 가야 할 것 같구나~.” 하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둘 슬픔을 감추며 풀어 놓는 아버지의 말에 놀라기는 커녕 병시중과 돈 걱정에 얼굴 살이 찌푸려지던 아들 내외 앞에 소리 없는 눈물로 쓰여진 통장 하나와 도장을 내민다.


“이게 뭐예요 아버지?” “그동안 이 애비가 모은 돈이다.” 그제야 구겨진 얼굴이 펴진 자식들은 통장 속 금액을 확인해 보는데~. “이게 얼마야? 십억~? ” 아버지를 보며 묻고 있었다. “아버지~! 십억을 유산으로 저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단~, 조건이 있다.” “뭔데요?” “간병해 달라거나 효도하면 준다는 조건 같은 거 말하실 건 아니죠?” “그런 건 불효자인 너희한테 요구하지 않겠다.” “그거 아니면 다 좋아요” “내가 죽기 전에 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면 너희 돈이 되겠지만 만약 못 알아내면 이 돈은 독거노인재단으로 넘어갈 것이야~.” “좋아요!! 그까짓 숫자 네개 정도야~. 하하하”

그날 이후부터 삼 형제 내외는 밤잠을 설쳐가며 자신들이 태어난 날. 결혼기념일, 자식들 생일 등등 수없이 비밀번호를 은행에 가서 넣어 보았지만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비밀번호는 결국 찾지 못한 채 10억의 돈은 독거노인재단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저희들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 0908인 걸 영원히 알지 못한 채~~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5월의 첫날이다.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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