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수퍼 코리안이 우주에!

2025-04-18 (금) 08:03:12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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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지구를 떠나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하여 환한 웃음을 짓는 한국계 미국인 조니 김(41, Jonny Kim), 그의 화려한 이력은 이민자라면 누구나 부럽기만 하다.
조니 김은 NASA의 달 유인탐사 프로젝트에 4월부터 약 8개월간 참여하고 있다.

장기간 우주 탐사를 하기 위한 인체의 생리의학적 내구도 적합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며 우주유영, 다양한 우주실험 미션도 수행한다. 이 아르테미스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한인 최초로 달을 탐험할 수도 있다.

해군특전단, 하버드 의대 전문의, 나사 우주인, 이 빵빵한 이력을 지닌 그는 한인 이민 1세들에게 얼마나 부러운 자식인가? 그런데 그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고난과 상처를 딛고 일어섰는지 그의 가정사를 알게 되면 정말 용하다, 훌륭하다, 혼자 잘 컸네, 앞으로 더 장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싶다 등등 온갖 말이 저절로 나온다.


조니 김은 1984년 캘리포니아주 LA의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 그가 18살이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고 경찰이 충돌해 대치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고 한다.

그 공포와 경악스런 현장에서 살아남은 소년은 얼마나 세상 사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을까?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을 지켜줄 수 있게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훈련이 위험하고 강하기로 소문난 해군특전단(네이비실)에 들어갔고 전투기 조종사 훈련을 마쳤고 하버드 의대에 진학하여 전문의가 되었다.
그는 나쁜 카드를 계속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며 아버지를 용서했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힘을 길렀다.

학교에 다니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자 아르바이트를 했고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릴 적 상처는 평생 못잊을 것이다. 기억하기조차 힘든 과거를 딛고 우뚝 선 그이기에 그 자리가 더욱 갑져보인다.

한인 1.5세, 2세들은 저마다 트위터에 조니 김이 우주정거장에 도착하여 미소짓는 사진을 올리고 있다. 프린스턴 출신으로 일론 머스크의 엑스AI에서 일하는 조카는 페이스북에 “Super-Korean is in space!!!(수퍼 코리안이 우주에 있다!!).” 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민 1세들은 대다수가 자녀교육을 위해 이민 왔다지만 모두가 하버드, 예일을 가고 의사, 변호사가 되지는 않는다. 보통 부모가 목사, 의사, 교수, 성실한 자영업자인 경우 아이들도 순하게 사춘기를 지나 명문대에 진학하지만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비리그를 가는 것이 미국 학생들에게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대치가 넘치는 부모와 그에 못맞추는 자녀 사이에 점차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타인종과 외모의 차이, 인종차별 등 느끼게 되고 2세, 3세들은 대부분 힘든 자기 정체성 시기를 겪는다. 낮은 자존감에 우울증으로 학교를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성인이 되어 정체성을 갖고 미국내 아시안 권리와 강화에 애쓰는 2세들도 있다.

2010년대부터 본격적인 K문화가 미국 사회에 전파되면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인터넷,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으로 전세계인들과 소통하게 되면서 새로운 세대들이 자부심을 갖는 기회가 되고 있다.

당당하고 멋진 코리안아메리칸 조니 김은 이민 가정의 꿈이자 희망인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전문직을 갖거나 비즈니스에 성공하진 못한 1.5세와 2세들일지라도 쉽게 살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내 소수 민족인 아시안으로서 여러 조건이 힘든데도 현재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얼마나 이 악물고 노력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1, 2세대를 이어 3, 4, 5세대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이다. 주인의식을 갖고 곧은 뿌리를 죽죽 뻗어가기 바란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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