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잊혀진다는 것

2025-04-17 (목) 08:03:32 조광렬/수필가·건축가
크게 작게
며칠 전, 또 한명의 고교동기를 떠나보내는 영결식에 다녀왔다. 생전의 아빠를 기억하는 딸의 조사를 들으며, 내가 죽고나면 남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될까하는 생각과 함께 문득, 영화 ‘코코(Coco)’가 떠올랐다. 제 90회 미국 아카데미(2018)에서 주제가상과 장편 에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죽는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잊혀졌을때”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였다.

요약하면, 뮤지션이 되고자 갈망하는 12세 멕시코 소년(코코의 증손자) 미가엘은 자신의 우상이요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서 미가엘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헥터를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조상님의 축복을 받아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즉 조상님의 은혜를 받아야 저주를 풀고 살아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道典 1:1)”라는 말씀을 생각케 했다.

멕시코 단체 제사의 날 ’죽은자(亡者)의 날’에 조상의 사진을 모시는 것, 그것의 핵심은 바로 ‘기억’이다. 세상을 떠난 가족이지만 그 온기와 사랑을 기억하는 것, 그들이 남겨 준 모든 기억의 유산들을 없애지 않고 남기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의 핵심으로 그려진다. 이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크고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삶이 죽음과 함께하는 방법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프면서 충격적인 장면은 영혼들은 이승에서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마지막 죽음을 맞는다는 대목이다. 멕시코 문화를 보여주는 이 영화가 오히려 우리 문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 많았다.

집안에 조상님의 사진을 모시고, 또 무덤에서 조상들께 먹을 것과 꽃을 바치며 기리는 모습이 그것이다. 제삿날 제수를 차려 놓고 누구에게 올리는 제사인지를 고하는 사진이나 초상화나 위패, 지방, 그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귀신(神明)은 올 수도 없고, 누구의 밥인지도 정해지지 않아 대접받을 명분도 없게 된다. 천지의 덕에 합하는 거룩한 예식인 제사에 맞게 예를 갖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동학에 뿌리를 둔 한국의 증산도 도전에서 상제님은 인간이 하늘과 땅의 조화로 태어나며 혼(魂)과 넋(魄)이 있어서, 죽음의 질서를 맞으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고 넋은 땅으로 돌아가 귀(鬼)가 된다’고 하셨다.

예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보통 ‘귀신’이라고 한 것은, ‘신(神)’과 ‘귀(鬼)’를 합하여 귀신(鬼神)이라 불러 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제사를 올리면 신은 제수(祭需)의 기운을 드시는데 이것을 ‘흠향’이라 하였다. “귀신은 먹어서가 아니라 기운으로 응감한다.(道典7:71:3)”

나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조상님 기일때면 사진을 모시고 제수를 차려 신식(新式?)제사인 추도예배로 은혜를 기억한다. 절은 제주인 나만 올리는 이유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미신이라 폄훼시키고 싶지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가엘의 고조할아버지 헥터가 딸 코코를 위해 지은 “Remember me”는 영화 ‘코코’의 주제가로 천륜을 노래하여 조상과 자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준다.


나를 기억해 주세요, / 이별을 고해야 하지만 / 나를 기억해 주세요, / 울지 말고요 / 내가 멀리 있을지라도 / 당신을 내 마음에 담을 거예요 / 우리가 떨어져 있는 모든 밤에 / 나는 비밀스러운 노래를 부를 거예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 먼 여생을 떠나야 하지만요 / 나를 기억해 주세요, / 슬픈 기타 소리가 들릴 때마다 /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 당신과 함께 있음을 알아주세요 / 내 품에 그대를 다시 안을 그날까지 / 나를 기억해 주세요.

노랫말만 들어도 가슴이 저려온다. 딸을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아빠, 오직 다시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그리워하는 가족애를 듬뿍 담고있다. 영화 설정상 기억 자체가 영혼이 생존하느냐 사라지느냐 하는 것이어서 더욱더 간절하게 느껴진다. 잊혀짐이 곧 진정한 죽음, 사라짐을 의미한다.

어쩌면 그 기억 덕분에 그리운 당신의 소중한 당신의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 영화의 따뜻한 상상이 우리의 삶을 위로해 준다. 내가 죽은후 나는 기억되는 사람일까? 아니면 잊혀지는 사람일까?

<조광렬/수필가·건축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