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래서 그랬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2025-04-10 (목) 02:52:42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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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은 많은 나는 여행을 다니며 직접 겪어보고 만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걸 보면서 무엇이든 이렇게 역지사지로 바꾸어 생각하면 무엇이든 그래서 그랬구나하며 이해하게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로 잘나고 튼튼한 부분은 계속 관리를 하고 부족하거나 약한 부분은 배우거나 음식과 운동으로 보살피면서, 나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할머니가 되면서 깨달아간다.

잔병이 많았던 나는 무당 굿과 소아과를 수 없이 다니며 그럭저럭 건강하게 어른이 되었지만, 결혼을 하고는 아기를 갖기 위해 방학이면 눈물과 돈을 쏟아 부으며 몸과 마음을 망가트린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고, 더 이상 내 몸에 칼부림은 없으리라 결심하고, 무자식 상팔자라며 한 남자와 변함없이 지지고 볶으며 산다.


그래도 엄마를 닮은 좋은 피부와 건강한 치아는 당연한 줄 알았다. 화장을 못하는 피부는 아직도 그런대로 건강하여 비싼 화장품 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한다는 주장은 변함이 없다. 급하면 가위나 칼 대신 이빨로 무엇이든 자르고 호두도 깨부셨으나, 미국에서 시작한 탄산음료, 햄버거, 피자를 즐긴 대가로 이제는 충치를 드르륵 갈아내고 임플란트를 하느라 잇몸에 기둥을 심을 때마다 벌벌 떨며 울면서 비싸다며 치과에 다닌다.

빗방울 사이로 다니던 날씬이는 통통이로 바뀌어도 무릎이 아픈건 엄마 닮아서라며 우기다가 결국 두 무릎에 칼질을 하고 나서야 귀찮고 지겹고 힘든 걷기 운동과 수영을 약 먹으러 가야지 하면서 다녀야한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여행을 가지만 인간이 만든 멋진 성, 성당, 고층건물, 최첨단 기계나 음악보다는 자연 그대로가 편안하고 그곳에서 나는 소리는 잠도 잘 온다. 그러다가 몇년 전부터 마이크소리, 라디오, 텔레비전 등 기계 음을 들으면 윙윙 거리고 귀가 아프고 또렷하지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가끔씩 엉뚱하게 큰 소리를 내고 짜증을 내다가 이비인후과에서 청력검사를 했다. 의사가 사회생활로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려면 보청기를 해야 된다며 여러가지 모양의 보청기를 보여주고 끼워준다. 참담한 나에게 꼭 필요한게 아닐 수도 있으니(?) 불편하겠지만 소음이 심한 곳을 피하면 될 정도라고 하지만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부터 주변의 친구들은 웬지 찡그리거나 심통이 난 모습이거나 표정이 무표정이다. 어디 아파요? 아니면 기분이 나빠요? 아니라면서 왜 그럴까? 기껏 설명했는데도 아니 내 말이 말 같지가 않나? 왜 대답을 안해? 완전 개무시하냐? 아니면 귀가 먹었냐? 모두 다 맞다. 잘 들리던 때는 니가 하는 말이 맘에 들지 않아서 들려도 못 들은 척 한 거였고, 이제는 가끔씩은 귀가 멍해지고 찌릿하면서 못 듣고 지나치게 된 것이였다. 대개는 기분 좋은 말은 잘 들리고 언짢거나 귀찮은 건 못 들은척하며 대충 넘어갈 때도 있다.

물론 말을 할 때는 상대와 얼굴을 마주 하며 표정도 함께 해야 알아 듣기 쉽다는 걸 안다. 칭찬을 하거나 의견을 낼 때에는 큰 소리로 확실하게 하는 것이 전달이 잘 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고로 남의 흉을 보거나 불평을 할 때는 귓속말로 소근소근 속삭이면서 맞장구를 치며 킬킬거려야 재미가 있으니, 남의 흉을 보면서 반듯하게 마주 보며 큰소리로 할 수는 없다. 그동안의 수많은 뒷 담화를 반성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여기 저기서 소근거리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저것들이 혹시 내 흉을 보는가 싶어 눈을 흘긴다. 이런 사정으로 이제는 본의 아니게 귓속말로 속삭이면 별 다른 대답없이 살포시 끄덕이는 조신한 할머니가 되어 가지만, 급하면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신이 나면 우선 내가 잘 들리게 시끄럽게 떠든다.

그즈음 가족 모임에서 불쌍하게 내 상태를 알렸지만, 원래 목소리가 큰 우리 가족은 아랑곳하지않고 여전히 각자 떠들고, 게다가 손주들이 학교에 다니더니 이상한 영어와 함께 한글학교에서 배운 어눌한 한국어까지 섞여서 시끄러운데 희한하게 아직까지는 아주 잘 들린다. 모임이 있을 때는 남편과 대부분 함께 가니 중요한 건 내게 한번 더 말해주고 덧 붙여서 본인도 중요한 내용은 마주 보며 말하겠다지만, 아이구머니나! 40년 넘은 남편은 눈빛만 봐도 그날의 일기를 아는 사이니까 고맙다고 대답은 했지만, 중요하다지만 쓸데 없는 잔소리나 귀찮은 심부름을 시킬 때는 못 들은 척하며 나중에 어머! 진작 말하지 그랬냐며 꼼수를 부린다.

그렇지만 전래동화의 임금님처럼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크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큰 귀를 소통의 창구로 삼은 것처럼, 듣고 싶은것만 들으려하지말고 다른 이의 말을 귀 담아 잘 들리도록 기울이며 말을 할 때도 한번 더 생각하고 다른 이를 대하게 되면 보다 나은 어른이 될 수도 있겠다.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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