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을 기다리는 마음

2025-03-10 (월) 08:07:59 김수현 포토맥문학회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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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고 감을 반복한다.
자고 나니 어제밤 눈이 소복히 와서 온천지가 하얗게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다.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뭉치를 머리에 이고 굳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일렬로 서서 사열을 받는 것 같이 장관을 이룬 광경이다. 눈의 경치를 바라보니 내 가슴에 정겨운 미소를 속삭여 주는 것 같은 야릇한 감정이 든다. 황급히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서 옛추억을 더듬어 본다. 그 옛날 한 방에서 식구들이 옹기종기 같이 부대끼며 살았었다. 어린 마음에 혼자 방을 써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한번도 그런 기회가 없었다.

지금 이 나이에 넓은 집에서 자녀들은 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고 '빈둥지'를 지키며, 덩그렇게 살다니 이게 무슨 복인가 하고 기쁨이 마음에 용솟음친다. 우리 뒤뜰이 넓으며 담장 너머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피래미 같은 작은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헤엄을 친다. 뒷베란다에서 수영복을 입고 있어도, 보는 사람 없고 울창한 수목으로 우거져 있다. 또한 뒤뜰에는 온갖 동물들이 여우, 사슴, 토끼, 너구리, 거북이가 제 집인 양 울타리 사이로 와서 뛰어 놀며 뒹굴다가 가기도 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뒤뜰에 야채라도 심어 놓으면 동물들의 밥이 되고 만다. 점점 나무와 산이 없어지면 동물들의 먹거리가 없어질 것이다.

이 집에 이사온 지가 10년이 넘어서도 이 집이 좋아 잘 살고 있다.
미국 생활이란 마음의 여유도 없이 새벽에 직장에 나가 저녁 별을 보고서야 집에 오니 집은 그저 잠자는 곳으로만 알았었다. 이제는 은퇴 해서 한가한 시간을 가지니 옛날 어린 시절도 회상하며 사색에 잠겨, 여유를 가지고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져 본다.
행복(幸福)이란 뜻은 다행이고, 행운이란 말이다. 별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꽃향기처럼 피어나서 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행복의 원리는 간단하다. 불만에 자기가 속지 않으면 된다. 어떤 불만으로 해서 자기를 학대하지 않으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봄이오면 뒤뜰에 앙상한 나무 가지마다 다투어 연녹색 잎을 피울 것이고, 아침 햇살을 받고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보는 내 가슴은 꽃잎처럼 휘날리며 움츠렸던 내 마음도 흥분의 도가니 속에 밀어 넣어 들뜨게 할 봄날을 기다려본다.

<김수현 포토맥문학회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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