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처럼 딸처럼

2025-03-10 (월) 08:07:30 이중길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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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어느 봄날, 오후에 환자가 찾아 왔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진료실로 향했다. 젊은 한국인 부부와 초등학생 어린 딸이 사무실 입구에서 인사하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가 오랜만에 한국어로 새롭게 들려왔다. 내가 뉴욕주에서 42년 동안 근무했던 대학병원에서 한국인이 드물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엄마는 머뭇거리며 말을 시작했고 딸 때문에 왔다고 했다. 옆에서 남편은 삼성회사의 직원이며, 최근에 컴퓨터 회사에 일 년 동안 연수를 받으러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엄마는 딸을 바라보며 나이 11살에 초경이 시작되었고, 혹시 무슨 병이 아닐까 걱정돼서 미국에 오기 전에 신문을 보고 한국의 한의사를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한의사에 따르면 초경이 빠른 아이는 뼈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키가 크지 않을 수 있고, 뇌하수체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여러 검사를 권했다. 예방 차원에서 한의학적 영양 치료를 권유 받았고, 그로 인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 오기 전 3개월 동안 한의사가 처방한 약첩을 열심히 복용 중이라며, 한의사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뉴욕주 수도에는 인구 30만 명에 비해 한의사가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소아과에서 상담 받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한의사를 원했다. 한의사가 어린애의 성장에 관해서는 한약으로 잘 치료를 한다고 하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한의사가 있는 뉴욕시에 찾아가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나에게 딸의 ‘골 성장판’ 검사를 받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미국에 와서 인터넷을 보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골연령 검사는 뼈의 성숙 상태를 평가하는 검사로, 뼈의 끝 부분에 위치한 연골판의 상태를 평가하는 검사인데, 이 연골판은 성장판으로도 불리기 때문에 골연령 검사는 '성장판검사'라고도 불린다. 미국에서는 내분비과 전문의사 혹은 소아과 의사의 의뢰에 의해 진행되는 검사이며, 환자가 직접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 모두 발전해왔고, 그 진단 및 치료 방법이 다양해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최근 인터넷이나 신문에서는 의사들이 다양한 치료법을 홍보하고 있다. 그들의 특별한 치료법이나 기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특히 어린이들의 성장 촉진, 모든 사람들의 비만 치료, 피부 미용 관리, 통증 치료 등 다양한 광고를 볼 때 일반 소비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비아그라가 나온 후 정력제 광고가 점점 사라지더니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광고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웰빙’이라는 용어가 인기 상품처럼 생활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미용 크림, 보톡스 치료, 눈 쌍꺼풀 수술, 그리고 여러 통증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치료 광고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광고들이 고통을 덜어주고 불안감을 해소하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최상의 치료가 될 것이라 믿으며, 젊은 부부의 요청에 따라 검사를 진행했다. 정상소견을 전했을 때 그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느꼈다. 그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며 웃으며 떠날 때,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허전함을 느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어린아이들이 초경이 왜 이렇게 빠른지 이해하지 못할까?
엄마처럼 딸처럼. 인터넷, 그것이 알고 싶다.

<이중길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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