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쟁3년 키이우에서] 끝까지 싸운다…시민들, 전투사격·드론 훈련으로 무장

2025-02-23 (일) 04:45:39
크게 작게

▶ ‘1명으로 10명을 이긴다’ 키이우 외곽 사격 훈련장…참호전, 시가전 등도 교육

▶ ‘최후의 방어선’ 시민들…드론 스쿨에 17세부터 전장에서 남편 잃은 여성도 수강

전쟁 3년을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도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전투사격 및 드론 훈련으로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21일 오후(현지시간) 방문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한 사격 훈련장에서는 민간인들이 전문 사격 교관의 지도 아래 실전과 같은 전투 사격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 사격 훈련장의 명칭은 'One More Than Ten'으로, '10명보다 더 나은 한 명'이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최후의 방어선인 민간인들 가운데 소수 정예를 양성해 러시아의 수적 우위에 맞서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비해 4배나 많은 인구와 15배가 넘는 경제 규모를 지닌 대국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맞서 끝까지 버틸 각오가 돼 있다고 전문 사격 교관 리스(Lis)는 힘줘 말했다.

이곳은 15m부터 300m까지 다양한 사격 거리의 실외 사격장을 갖추고 있다. 참호전과 시가전, 건물 진입 작전까지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이 있다. 하루짜리 속성 코스가 있고 5∼10일간의 장기 교육 과정에도 참여할 수도 있다. 장기 코스를 마치면 수료증을 준다.

리스는 2010년부터 특수부대와 일해왔으며 2022년 2월24일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자원했다. 격전지였던 이르핀, 부차, 고스토멜 전투에 참전했고, 사격 교관으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여단의 수석 교관으로도 임명됐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군인들을 교육하던 중 포탄 피해로 장애 판정을 받아 결국 제대했다. 이제는 무보수로 민간인에게 전투 사격을 가르치고 있다. 민간인 훈련생 중 15%는 여성이라고 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전투 실력을 늘리기 위해 휴가, 전근 발령 등을 계기로 이곳을 찾아오는 군인들도 많다고 들었다.

리스를 비롯해 전원 군 베테랑 출신인 이곳의 교관 25명은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소형 화기 사용법뿐만 아니라 전투 의무 교육, 무인 드론 작전 등 전투 시 필요한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가르친다.

리스는 "더 많은 사람이 이러한 기술과 지식을 갖출수록 우리는 우리 땅을 더 잘 지킬 수 있다"며 "잘 훈련받은 한 명은 그렇지 않은 10명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사격 훈련장과 연계된 드론 스쿨도 있었다. 드론 스쿨에서 기본 이론, 장애물 통과 비행, 시뮬레이션 실습 등 실내 훈련을 마친 뒤 이 사격 훈련장에서 실외 훈련을 하는 구조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치명적 무기로 변모한 드론 조종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강사들은 모두 군인 출신이다. 이들은 자신의 실전 경험을 민간인 훈련생들에게 고스란히 전수하고 있었다.

강사 블라디슬라우 쟈보로노크는 "정찰 드론이든, 자폭 드론이든, 폭탄 투하 드론이든 드론의 크기와 무게, 목적에 상관없이 드론 조작법은 동일하다"며 "이곳에서 제대로 배우면 어떤 드론이든 조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7세 교육생도 있었다며 지난해에는 전장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이 드론 조종법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쟈보로노크는 이번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다른 강사인 비탈리와 미하일로는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 기초 과정을 이수하고, 자신이 흥미를 가진 분야를 선택해 심화 과정을 수료한 뒤 탄탄한 지식 기반을 갖춘 채 우크라이나군에 합류한 사례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인적 자원 격차를 넘어서려면 조국을 지키겠다는 강한 동기 부여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곳에선 단순한 드론 조작법뿐만 아니라 훈련생들과의 심리적 작업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쟁 발발 3주년(24일)을 앞두고 기자가 17일부터 21일까지 취재한 키이우는 도시 곳곳에서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도만큼은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른 지역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주택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키이우 인구는 불어나고 있지만 키이우 시내에는 제복을 입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젊은 남성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져 징집 대상자와 예비군 전체가 소집된 탓이다. 젊은 남성들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신체적으로 장애를 입거나 정신적인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적은 내부에도 있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은 부대마다 '정치위원'을 파견해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이는 즉결 사형시켜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구소련 시절 병영 문화의 잔재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군대에도 남아 있다고 한다.

사령관의 명령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문화가 장기화한 전쟁 속에서 병사들의 탈영을 부추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워낙 복합적인 문제라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25세인 징집 연령을 18세로 낮출 것을 요구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미래 세대를 보호하려는 고민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젊은 남성이 사라진 키이우에 와서야 깨달았다.

이런 판국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간절히 원하는 안전 보장에 대한 약속 없이 '미래의 먹을거리'인 희토류 자원 지분 50%를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과연 현재를 지키고 미래도 사수하면서 이번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을 안고 키이우를 떠났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