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를 맞았다. 이번 연말연시는 너무 황당하고 놀랍고 참담한 일들이 많아 한해가 어떻게 가고 왔는지 모른 체 맞이하였다. 감사의 뜻도 못 나누고 두미(頭尾)없이 떠나보낸 지난해에게 미안하고, 벙벙한 가운데 두서(頭緖)없이 맞이한 새해에게도 겸연한 마음이다.
새해에는 더 나답게,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때로 다른 사람처럼 살려고, 다른 사람의 얼굴로 살려고 애쓰려 했던 마음 내려놓고, 한 시인의 말처럼 나답게 살고 싶다.“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메이 사턴 May Sarton)
새해에는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다시는 위헌불법 비상계엄이 없고, 한겨울 눈보라 치는 추운 날씨에 대통령 탄핵과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외치는 수 많은 시민들이 더는 거리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 반대편에서 옹색한 논리로 맞대응하며 탄핵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동족이 서로 으르렁거림 없고, 테러와 차별과 총기범죄가 없는 사회, 서로의 다름이 반목이나 불목(不睦)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삶을 깊고 풍성함으로 이어주는 그런 품격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 시작은 물음이요 생각이다.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나라다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나다움, 나라다움, 옳고그름의 분별에 이르는 첫 걸음은 생각이다. 사람이 곧 생각이요, 생각이 곧 그 사람이다. 존재와 사유는 분리될 수 없다.
생각이 삶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생각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인간 존재의 근거를 생각에 두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치 않으면 맹목적으로 되고(學而不思則罔),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논어, 위정). 공자는 생각의 강조와 함께 동시에 생각의 빈곤이나 나태를 경계하였다. 성경은 ‘좋은 생각’의 근원이 하느님이라 말씀한다. “좋은 생각 주시는 야훼님 찬미하오니 …”(시편 16:7,공동번역)
생각 없는 삶, 생각의 빈곤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깨우쳐 준 한나 아렌트(Hanna Arendt)에게 감사한다. 그녀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600만 학살을 집행한 나치 전범(戰犯) 아이히만을 통하여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고발한다.
천인공노(天人共怒)의 악행을 범한 아이히만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한 가정의 성실한 가장이었으며, 이웃 사람들에게 친절했으며, 자신의 업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며 명령을 따른 평범한 군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나는 죄가 없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령에 따른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음’에서 악행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생각하지 않음으로 죄를 진 것이다. 악은 특정인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라도 생각하지 않는 행동, 생각없는 맹종은 언제든 악을 가져 올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이다.
작년 12월 고국의 위헌불법 비상계엄선포 당시 부당한 명령에 동조한 군지휘관들, 국회에 난입했던 특수부대원들, 국회를 가로 막은 경찰들의 행위에서, 이 시대의 아이히만을 본다. 그들은 한 가정의 성실한 가장이요, 한 가정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요 딸이다. 그러나 부당한 명령에 따름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유혈사태를 가져올 지 모르는 불법 계엄에 동조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간다움, 군인다움, 경찰다움 곧 진정한 자기다움을 잃었다.
생각하지 않음은 사람다움을 잃게하고, 악행으로 이어진다.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존재에 우선함을 느낀다. 생각이 삶이다. 생각의 빈곤, 생각의 나태를 경계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생각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 없으면 행동할 수 없다. 새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나다움을 찾고, 함께 더불어 생각하며 나라다움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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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