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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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동행자 찾아요” 오픈 채팅방서 타깃 찾는 범죄자들

2024-07-10 (수)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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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만명 이상 해외서 범죄 피해
▶범죄 이력자, 치안 불안국으로 옮겨

▶ 나홀로 여행객과 친분 쌓은 후 범행
▶한국인 가해자 3년간 1500명 달해
▶“출입국자 범죄 전력 등 공유하고 외국인 범죄자도 관리할 필요성”

지난 5월 초 태국에서 한국인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파타야 인근 한 저수지에서 200L 드럼통 안에 시멘트와 혈액이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이 발견됐다. 일명 ‘태국 파타야 드럼통 살인 사건’으로 칭해지며 수사가 진행되었고, 피해자(A씨)와 가해자(B씨) 모두 한국인으로 밝혀졌다. 이전에도 태국 방문 경험이 있던 A씨는 입국 후 태국 현지 한국인들과 함께 클럽을 출입하였다. 그러다가 며칠 뒤 일상적 생존 기록이 사라졌다. A씨 가족들은 “동생이 마약을 버려 손해를 봤으니, 1억 원가량을 보내라. 안 그러면 손가락을 자르고 장기를 팔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게 된다. 이미 살해된 뒤에 개시된 협박이었다. B씨의 범죄는 셋업범죄(범죄 혐의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감금, 강도, 살인 등으로 이어지는 범죄)였다. 돈이 목적이었다. 범죄에 가담한 사람은 B씨를 포함해 세 명이었고, 이들 중 두 명은 체포됐다.

▲범죄촉발 3요소가 모두 개입된 파타야 사건

가해자 입장에서 보면, 파타야 사건은 3가지 범죄촉발 요소가 결합된 사건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불법행위라도 가담할 수 있는 범죄 전력자가(동기화된 범죄자) △돈이 될 만한 매력적인 피해자를 찾아다니던 상황에서(취약한 피해자) △체포의 확신성이 낮은 형사사법 체계(보호체계의 부재)라는 세 가지 조건이 범죄 실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B씨 등이 피해 사체의 손가락을 잘라 훼손한 것도 당국의 수사를 어렵게 만들어 본인들이 붙잡히는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계획성이 엿보인다.


피해자의 상황은 어떠한가. A씨는 소셜네트워크 오픈 채팅방을 통해 태국에서 클럽에 같이 갈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B씨는 그걸 보고 접근하여 친분을 쌓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시간을 보낸 한국인에게 짧은 시간에 친밀감을 느끼고, 반복적 만남은 신뢰감까지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같은 시간 B씨는 가해 매력도를 계산하며 범죄를 계획하고 있었다. 혼자 타국에 여행을 왔다는 것, 금전적 여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인 취약성인 것이었다.

한국인이 국외에서 범죄 피해를 입는 건 최근 문제만도 아니요, 가해자가 꼭 한국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법무연수원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매년 1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해외에서 범죄 피해를 입는다. 2018년 1만3,225명, 2019년 1만6,335명, 2020년 9,113명, 2021년 6,498명, 그리고 2022년 1만1,323명이었다. 2020년과 2021년 수치는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감소이다. 2022년 통계는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재외국민의 범죄 피해가 코로나 발생 이전 수준에 다다랐다는 점에서 위험 신호이다.

▲ 급증하는 한국인에 의한 해외 살인 범죄

특히 살인 범죄의 증가는 주목해야 한다. 2018년 살인 범죄는 12건이었던 반면 2022년에는 17건으로 보고되었고 2023년 상반기에만 19명으로 2022년 전체 살인 피해자 수를 넘어섰다. 2022년 17건의 살인 사건 중 5건은 필리핀에서, 4건은 미국에서, 2건은 독일에서 그리고 6건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였다.

한국인이 가해자인 경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재옥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2020년부터 2022년 6월까지의 재외국민 가해 현황’은 3년이 채 안 된 기간 1,500명 가까운 한국인이 범죄에 가담했음을 보여준다. 사기 444명, 폭행상해 421명, 마약 360명, 절도 207명, 도박 269명, 강간·강제추행 75명, 살인 26명, 강도 26명, 납치감금 12명이다. 피해자가 한국 국민인지, 교민인지, 해당 국가 국민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국인의 가해도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대로 해외에서는 한국인을 더 조심해야 하는 걸까. 또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놔야 할까.

범죄는 취약성을 따라다닌다. 해외 거주 한국인이 많아지고, 해외 방문 한국인이 많아진다면 절대적 범죄 수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타국 언어와 문화, 그리고 법률 지식이 깊지 않은 해외 방문자는 언어가 통하는 한국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동질성은 친밀함으로 쉽게 발전되기 때문에 가해자는 빠른 시일 내에 쉽게 피해자의 취약성을 읽을 수 있다. 통상 범죄가 동질적 집단에 가해진다는 특성이 그대로 적용된다. 외국에서도 한국인 가해자들은 예측가능한 한국인을 범죄 목표물로 삼는 것이 쉬운 것이다. 안정적으로 현지에 정착한 교민과 관광객은 다르기 때문이다. 교민에 대한 범죄는 교민과 상호작용하는 현지인과 교민 커뮤니티 안에서 발생하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범죄는 체류 신분이 불안정한 한국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현지 한국인들은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한국에서 범죄 전력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태국 드럼통 살인 사건 용의자도 한국에서 그랬다는 증언이 있다. 다수의 불법행위자가 체포의 확신성을 낮추기 위해 치안 환경이 불안정한 국가로 옮겨가는 건 그들에게는 합리적 선택이다. 범죄 전력자의 관리에서 국경이 없어야 하는 이유이다.

출입국자들의 범죄 전력과 거주지 파악은 국내 거주 국민들뿐만 아니라 재외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에서 유입되는 외국 범죄 전력자에 대한 파악과 관리도 필요하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살인죄로 복역한 후 가석방된 한국인이 국내에서 추가 살인을 저질렀지만, 정부 어느 부처도 그의 위험성을 미리 파악하지는 못했다. 국민의 합리적이고 당연한 기대가 행정절차에서는 무리한 요구가 되는 것이다.

▲ 여행 정보 채팅방 노리는 현지 범죄자들

한국인을 믿어서 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오픈 채팅방과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러 국가의 여행 정보 공유방이 넘쳐난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동행자를 찾는 글을 올리고 채팅을 주고받는다. 그 글을 현지 범죄자가 얼마나 재미있게 보고 있을지는 한 번쯤은 걱정해봐야 할 일이다.

태국 파타야 드럼통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외교부 해외안전 여행정보사이트(0404.go.kr)에는 해당 사건 소개와 경고는 한 건도 게시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재외국민 사건사고에 대한 파악과 보고를 국민에게 충실히 해야 할 것이며, 법무부는 재외국민 범죄 전력자에 대한 파악은 물론 더 꼼꼼하게 출입국자 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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