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현대예술협회(KACAL) 서예분과위원회
▶ 매년 협회 정기전시회와 분과전시회 통해
한미현대예술협회 서예분과 작가들. 김인숙(왼쪽부터), 안순영, 박성실(분과위원장), 권명원, 노명숙, 김영희, 김미숙씨. 이유성, 이미선 작가는 사진에서 빠져있음.
▶서예 입문하는 한인들에 모범적 길잡이
▶KCS 센터·경로회관 등서 다양한 클래스 열어
한글 서예는 1446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이후부터 시작, 1700년 초 숙종대에 이르기까지 궁중에서 왕후와 서사궁녀들의 철저한 교육 수련과 전수과정을 거쳐 궁체라는 한글 고유서체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1700년대 후반 영정조대에 이르러 국문학이 융성하고 한글 필사가 크게 늘며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글서예는 예술적인 경지로 더욱 발전하게 되면서 다양한 서체를 개발하게 되었으며, 한문과는 다른 글자체와 운필법으로 독자적인 한글 서예의 영역을 구축하였으며 현대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멋 글씨 (한글 캘리그라피) 라는 새로운 영역으로도 발전해가고 있다
올해 봄 타운홀에서 개최된 작가전 전경(왼쪽), KCS 서예 클래스 기초반 수련중(오른쪽)
한미현대예술협회 타 분과 회원들과 함께(왼쪽), 권명원 작가 휘호 시연중(오른쪽)
■한글 서예가들의 활동 및 전시회 성황
이러한 시대적 추세에 힘입어 미 동부 한글 서예의 연구와 보급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미현대예술협회(KACAL) 서예분과는 훌륭한 서예가 9인이 앞장서 미국속에 한인 서예 보급 및 발전에 힘을 다하고 있다.
본 서예 분과는 매년 협회 정기전시회와 분과전시회를 통해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발표하여 서예에 입문하여 수련하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모범적인 길잡이가 되고 있다.
특히 금년 봄에 본 서예분과는 9인의 협회 회원작가들이 작품을 모아 플러싱 타운홀에서 대규모 서예전을 개최, 참석한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서예를 사랑하는 한인인구 증가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서예분과 회원 작가들의 현황
본 서예 분과의 소속 9인 작가의 실태를 살펴보면 그 이력만 보아도 대단하다. 다년간 한글 서예 연구는 물론, 3인의 국전작가, 4인의 한국 유수 한글서예공모전 초대작가 외에 최우수상, 우수상, 특선 등 다양한 수상경력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한인사회 및 미 주류사회의 각종 행사에서 서예 시연으로 국위를 선양했으며, 각 대학 및 단체에 서예 강좌 개설 및 지도로 서예 보급 발전에 힘쓰고 있다.
■한글 서예 입문 및 수련 방법
뉴욕 일원에는 9인 서예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서예 클래스가 개설되어 있고, 입문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구분되어 있어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수준에 맞는 클래스를 선택하여 수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 본 서예분과위원회의 박성실 위원장을 비롯, 노명숙 작가 및 김인숙 작가, 김미숙 작가 등 4인의 유능한 회원 작가들이 나서서 베이사이드 및 맨하탄 소재 한인봉사센터(KCS)와 플러싱 효신장로교회내 KCS 경로회관에서 서예 입문 및 작가진출을 희망하는 한인들을 위해 열심히 지도하고 있다.
박성실 분과위원장은 “노후에 가장 평온한 마음으로 묵향을 맡으며 서예에 매진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세상을 하직할 때, 자식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멋진 서예작품 두루마리 족자 하나씩 남긴다면 이보다 더 뜻 깊은 유산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면서 한인들은 주저하지 말고 서예 입문의 길에 들어서기를 적극 권고한다.
서예 입문과 작가진출에 관심있는 한인들은 (516)673-1602로 연락하면 된다.
■ 3인의 서예가 인터뷰
노명숙씨, 이유성씨, 권명원씨
많은 한인들에 한글서예 습득 기회
■ 한글 서예 지도교사 노명숙씨
서예가 노명숙씨는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출신으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화여중의 국어교사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지금은 이민 와서 한글 서예 지도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노명숙 작가가 서예를 시작한 것은 고교시절 특별활동 시간에 붓글씨 수업을 받은 것이 시초였다. 그때부터 서예에 관심이 많아 궁체를 거의 개인지도를 받을 만큼 열심이었다. 이러한 열정으로 고3때인 1956년 당시 국전 5회에 입선, 대학 1학년때도 국전에서 입선을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그의 작품생활은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때부터 그 당시 한국에서 이화여중에서 서예를 가르치시던 이미경씨를 찾아가 계속해서 한글 서예를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1965년 미국에 이민 와서 서화협회를 찾아가 한문서예를 2000년대 초까지 공부하다가 한문과 한글을 같이 하는 서예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한글서예가 알려지기 시작,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한인들이 노 작가로부터 한글 서예 습득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가 처음 가르친 대상은 한글학교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이었는데, 지금은 일반인에게 한글 서예 궁체 및 판본체 등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세계서예대백과사전 작품 수록
■ 경력49년 이유성씨
이유성 작가는 서울대 생물학과 출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과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인물이다. 그가 한글서예를 하게 된 것은 고교 1학년 때였다. 한글 서예를 독학으로 공부해 쓴 붓글씨를 집안에 도배를 하게 되었다.
당시 6.25때 납치된 아버지 대신 삯바느질을 하던 어머니에게 저고리를 맞추러 왔다가 이를 본 당시 이화여고 교사인 이미경씨가 잘 썼다고 칭찬하며 서예가인 언니 이철경씨를 소개해 그에게 가서 배워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를 전후해 이철경씨가 전시회를 할 때마다 함께 작품을 출품하면서 1964년도 국전에 입선했다. 1970년도 미국에 오면서 서예 정진의 시간은 20년간 공백을 맞이한다. 그리고 다시 서예에 매진, 그의 서예경력 기간은 거의 50년에 가깝다. 그간 개인전을 4회 열었다.
그는 Art Student League of NY의 최초 서예강좌 개설 및 강의, 세계서예대백과사전 작품 수록, 우표에 3셋트 작품 수록 등 그의 작품은 곳곳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해외한인 최초 초대작가
■ 특선 3회, 입선 4회 권명원씨
권명원 서예가는 7살부터 형을 따라 서당에 가서 한글 서예를 어깨너머 배우게 된 것이 붓을 잡게 된 시초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서예에 빠지게 된 것은 고교 때 전국대회에서 특선을 하면서 부터였다.
성인이 되어 한국개발연구원에 근무하면서도 계속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결국 1982년도에 제2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출품한 서예작품이 입선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특선 3회, 입선 4회의 실적을 올리면서 해외이민자 최초로 초대작가의 반열에 올리는 실적을 거두었다.
전에는 해외 출품자가 거의 없을 때였는데, 이때부터 권 작가의 뒤를 이어 점차 범위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권 작가가 첫 번째 한글서예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은 1980년도 덕수미술관에서였다. 당시는 궁체와 판본체밖에 없을 때였는데, 권 작가는 8가지 글씨체를 모두 섭렵, 관람객들이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다양한 그의 서체를 본 당시 가야금으로 유명한 황병기 이화여대 국악교수가 국악당을 지을 때, 무대에 권명원 작가의 한글서예 24폭짜리 병풍을 만들어 설치했다고 한다.
권 작가의 작품은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미 국회의회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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