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적인 흡혈귀 소녀와 소년의 애틋한 첫 사랑의 로맨틱 코미디

2024-06-21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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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휴머니스트 뱀파이어’(Humanist Vampire Seeking Consenting Suicidal Person) ★★★★(5개 만점)

▶ 인간을 제물로 죽이기를 거부하는 10대의 성장통을 은유적으로 비유

인간적인 흡혈귀 소녀와 소년의 애틋한 첫 사랑의 로맨틱 코미디

흡혈귀 소녀 사샤와 폴(왼쪽)이 브렌다 리의‘이모션스’를 들으며 수줍은 눈길을 나누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흡혈귀 소녀와 인간 소년의 애틋한 첫 사랑의 드라마로 귀염성 있는 로맨틱 코미디다. 흡혈귀 영화여서 붉은 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끔찍하고 폭력적이기보다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 속에 시치미 뚝 뗀 유머를 잘 소화시킨 사뿐하니 경쾌한 영화다. 역시 흡혈귀 소녀와 인간 소년의 정을 그린 ‘렛 더 라이트 원 인’과 ‘트와일라이트’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작품으로 따스하고 달콤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자기가 살기 위해 인간을 제물로 죽여야 하는 흡혈귀가 인간의 고통에 동정과 연민을 느껴 인간을 죽이기를 거부한다면 어쩌겠는가. 그래서 사람 죽이기를 거부하는 어린 딸 사샤의 아버지(스티브 라플랑트)와 어머니(소피 카디외)의 고민이 심각하다, 이 영화는 이런 사샤를 통해 고독과 성적 불안감 그리고 우율과 소외감 및 타인과의 연결 고리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증상인 10대의 성장통을 은유적으로 비유하고 있다.

서막식으로 어린 사샤의 새일 파티장면으로 시작된다. 사샤의 집에 어릿광대가 찾아와 사샤를 즐겁게 하는데 이 광대는 사샤의 부모가 사샤의 먹이로 데려온 것. 사샤의 부모가 딸에게 저 광대를 죽여 그 피를 빨아먹으라고 종용하나 사샤는 이를 거부한다. 그런데 사샤는 흡혈귀 특유의 뾰족한 송곳 이빨도 채 안 나왔다. 그래서 사샤의 부모가 딸을 데리고 흡혈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사샤의 신경계통에 이상이 생겨 인간의 고통에 동정을 느끼게 됐다고. 그래서 사샤는 자기 부모가 냉장고에 보관한 플라스틱 백에 든 인간의 피를 빨대로 빨아먹으면 삶을 유지한다.


이제 사샤(사라 몽프티)는 10대가 되었다. 보이긴 17세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68세. 참다못한 사샤의 부모는 딸을 생활력이 강한 보헤미안인 이모 드니즈(노에미 오패럴)에게 보내 제대로 된 흡혈귀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사샤는 송곳니가 나오기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도 인간의 피를 직접 빨아 마시기를 거부한다.

어느 날 사샤가 밤 외출을 나갔다가 볼링장 지붕 위에 선 고교생 폴(펠릭스-앙트완 베나르)을 발견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폴은 학교에서 앙리에게 시달림을 받는가하면 자기가 일하는 볼링장에서도 왕따를 당한다.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고 지붕 위에 올라갔던 것. 그런데 사샤도 먹으면 죽는 인간의 음식을 먹고 죽어버릴까 하고 고민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자살방지 센터 모임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폴을 다시 본다. 사샤와 폴이 서로 부끄러운 눈길을 나누면서 가까워진다.

그리고 사샤의 고민을 들은 폴은 기꺼이 사샤의 제물이 되겠으니 자기를 제물로 삼으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사샤가 폴의 피를 빨아 마시기 전 날 둘은 앙리를 비롯해 폴을 괴롭힌 사람들을 찾아 복수를 시도한다.

사샤 역의 몽프티와 폴 역의 베나르의 콤비가 절묘한데 브렌다 리의 히트송 ‘이모션스’의 LP를 틀어놓고 둘이 수줍고 어색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노래에 맞춰 몸을 천천히 흔드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이 매력적이다. 특히 비쩍 마르고 창백한 얼굴에 침울한 모습을 한 몽프티가 연기를 매우 잘한다. 명암의 대조가 어울리는 밤의 분위기를 잘 살린 촬영도 좋고 스타일도 멋진 영화다. 캐나다 영화로 아리안 루이-세즈 감독(공동 극본). 불어대사에 영어자막.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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