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레를 배우며

2024-06-14 (금) 이보람 수필가
크게 작게
발레를 시작했다. 30대 후반에 무슨 발레를 시작하느냐고 하겠지만 친구의 권유로 얼떨결에 발레 클래스에 등록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무용 시간에 무용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발레를 배우는 것은 처음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음악에 맞춰 선생님을 따라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힌다. 움직임이 크지 않은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코어 근육을 강화시키고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온몸이 쑤셔 혼이 났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해본다. 고개는 꼿꼿이 들고 발가락을 한껏 세워 포인트 동작을 하면 한 마리 백조가 된 것 같이 몸이 가벼워진다. 욕심을 부려 우아한 손짓도 곁들여 본다.


운동은 뭐든 장비발이라고 하지 않나. 발레 슈즈며 레오타드, 타이즈, 랩스커트며 프로 발레리나나 입을 법한 복장들을 잔뜩 샀다. 선생님께서 복장을 잘 갖춰 입어야 몸의 선도 더 잘 보이고 몸도 긴장하게 되어 더 예쁘게 동작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토슈즈는 몇 년을 수련하고 정말 발끝으로 서서 온몸을 지탱할 힘이 생겼을 때만 허락된다고 하는데 일단 꿈은 크게 꾸라고 했으니 언젠가 나도 토슈즈를 신어볼 날이 오리라 믿는다.

평소에도 발레리나처럼 허리를 펴고 곧은 자세를 유지하면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된다는 선생님 말씀이 생각날 때마다 자세를 고쳐 잡아본다. 발레 스텝으로 허벅지와 코어에 힘을 주고 걸으면 구부정한 허리도 펴지고 몸매도 예뻐진다고 하니 장을 보러 가서도 걸음걸이에 신경을 써본다. 쇼핑 카트 손잡이를 발레 바 삼아 배웠던 동작들을 따라해보는 내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해보니 좋다 싶어 딸아이도 유아 발레 클래스에 등록시켰다. 분홍빛 발레복을 입고 내 손 한 뼘도 채 안 되는 발레 슈즈를 신은 딸아이를 보니 내가 더 신이 난다. 책 속에서만 보던 발레를 직접 배운다고 하니 아이도 기분이 들떴는지 폴짝폴짝 뛰어댄다. 그렇게 우리 집 꼬마 발레리나가 탄생했다. 매일 발레복을 입겠다고 난리다.

13세기 이탈리아 귀족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는 발레는 16세기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혼인하며 프랑스 왕궁으로 전파된다. 이때 발레라는 용어가 생겼다. 프랑스 궁중 발레는 루이 14세가 ‘왕립무용아카데미’를 설립하며 크게 발전한다. 그는 매일 발레 연습에 힘쓸 만큼 발레를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발레는 러시아로 넘어가 전성기를 맞는다. 근대 발레의 시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유명한 발레 작품들이 모두 러시아에서 만들어졌다.

발레를 같이 배우는 친구들과 나중에 발레 공연도 같이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취미로 시작한 발레이지만 일주일에 두 번 같이 땀 흘리며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발레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나중에 실력이 더 늘면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도 해보자고 농을 친다. 아직 손발을 이리저리 펄럭 거리는 수준의 딸아이와도 함께 공연하는 날도 꿈꿔본다.

내일은 발레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어제 새로 배운 에이샤페, 쿠페, 파세 동작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뚱이가 야속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우아한 날갯짓을 해본다. 내일은 조금 더 멋지게 날아봐야지.

<이보람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