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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생명

2024-11-15 (금) 김홍식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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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 파병되었다. 독재자가 야심과 탐욕을 가지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일부 특권층을 유지하기 위해 약자를 강제로 이용하는 것, 현대판 노예이다, 노예무역의 시작은 아주 오래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사회적 힘의 불균형이 만들어 낸 전쟁의 역사이고, 그 산물이 노예의 역사이다.

모든 사회에 노예가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7세기부터 이슬람인들이 유럽인, 특히 슬라브인을 노예로 만들었고 같은 시기 사하라사막 횡단 노예무역이 진행되었다. 노예시장에 노예무역으로 인해 흑인들이 처음으로 노예로 팔리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은 이후 16세기부터 흑인을 노예화 했다.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인한 아프리카 흑인의 강제 이주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으며 그로 인한 부정적인 여파는 현대, 미국에도 남아 있다.

유럽은 기독교에서 같은 기독교인을 노예로 삼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대신 농노제가 있었다. 그러다 포르투갈인이 아프리카를 통해 대대적인 노예무역을 시작한다. 아프리카 부족 중에는 포르투갈과의 교류를 통해 머스킷과 같은 총을 얻은 곳이 있었는데 이것이 그들의 세력 확장 및 유지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고, 이들 아프리카의 여러 세력은 무기를 얻기 위해 농노 및 포로를 노예로 제공하였다. 흑인을 노예화 시킨 세력은 백인 들 뿐만 아니라 같은 흑인 세력들이었다. 탐욕으로 가득해 같은 민족의 생명을 팔아넘긴 역사는 옛 부터 있었고 모든 시기를 통하여 반복되고 있다.


1500년대에서 1800년대 중반까지 적게는 1,200만 명, 많게는 2,0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아프리카를 떠났고 아메리카 대륙 이외에도 다른 곳으로 팔려갔지만, 항해 도중 죽임을 당하거나 죽은 노예들이 많았다. 수송비를 아껴서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특수하게 개조된 대형 화물선인, 노예선의 배 밑바닥에 노예들은 일렬로 뉘어졌고 사슬에 묶인 채로 있었다. 그리고 묶여있는 자리에서 대소변을 보아야 되었고 아래층에서는 위층에서 떨어지는 배설물을 뒤집어 써야 했다. 이렇게 위생환경이 열약했고, 탈수, 영양실조, 괴혈병에 전염병이 돌아 사망률이 평균 15%, 최대 33% 까지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경우에는 배에 실은 노예 중에서 절반 정도만 대서양을 건넜으며, 그래도 비용을 별로 쓰지 않은 노예 상인 입장에선 이득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노예를 위한 최소한의 위생과 음식 값도 자신을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탐욕이다. 노예 수송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무역과는 다른 시기에 영국은 네덜란드가 포기한 호주를 선점하고 18세기에 죄수들을 호주로 강제 유배시켜 호주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 당시 영국에서 호주로 이송된 죄수들을 족쇄로 채워 8개월간 수송하면 생존율이 40% 정도였는데 선장들에게 미리 노예를 실은 숫자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도착한 장소에서 살아 있는 노예의 수대로 돈을 주기 시작했더니 생존율이 98% 까지 올라갔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노예제도가 옛날이나 남의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님을 느낀다. 약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정도가 조금만 도를 지나치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노예 상인의 역할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던 인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김홍식 내과의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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