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읽은 명작

2024-03-05 (화)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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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사회적 약자에게도 인권이 있는가?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저 / 민음사>

내가 읽은 명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독일 하인리히 뵐의 1974년 작 소설이다.

하인리히 뵐(1917~1985)은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쾰른 대학 독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군에 징집되어 유럽 전선에서 복무하다 네 차례나 부상당한 끝에 1945년 4월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 2년 후 풀려난 30세에 전업 작가가 된다. 1949년 병사들의 절망적인 삶을 그린 『열차는 정확했다』를 필두로 전쟁의 참혹상을 그린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수상하며 중견작가가 되었고 1953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발표하여 많은 독자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대성공을 이루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또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작품이며 그의 내면에 있는 정의로움이 베어 나오는 작품이다. 그는 1971년 『여인과 군상』을 발표하여 성취만 지향하는 사회를 일갈했다. 같은해 그는 독일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 팬클럽 회장으로 선출되어 탄압받고 투옥된 작가들을 석방 시키기 위해 노력 하였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선정적이고 흥미 위주의 기사만 쓰며 진실을 왜곡하는 황색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여준다.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한 여인의 삶을 그렸다. 마치 50년이 지난 우리 시대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7세의 미모의 이혼녀 카타리나가 클럽에서 만난 매력적인 남자 괴텐에게 첫눈에 반해 하룻밤을 자기 집에서 같이 지낸 후에 철저히 짓밟히는 명예…. 자신을 탈영병이라 소개했던 괴텐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 카타리나였다. 그러나 그는 살인과 강도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는 인물이었다.

이튿날 아침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쳤지만 이미 도주해 버린 남자. 그녀는 강도들의 일당과 범인 도피죄로 몰리면서 차이퉁 지(이 지역의 일간지) 에 의해 온전히 매춘녀로 각색된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과 출장은 매춘을 위해 신사들의 집을 방문한 것으로 매도되었고 가정 관리사로 일하며 알뜰한 삶으로 모인 모든 재산은 불법으로 모은 더러운 것으로 차이퉁 지에 의해 보도 되었다. 사건의 무죄 추정 원칙을 무시하고 경찰 수사과장 바이츠메네가 심문한 내용을 그대로 차이퉁 지에 흘린 때문이었다.

그녀를 괴롭히던 기자 퇴트게스는 카타리나가 요청한 공개된 인터뷰 장소에는 나타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카타리나 블룸에게 불쑥 찾아와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집으로 밀고 들어와 “일단 섹스부터 하고 시작하는 게 어떨까?” 하다가 분노에 찬 그녀가 쏜 몇 발의 총알을 맞고 죽는다.

왜 우리는 언론이나 경찰 조사에 의해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에 대에 무조건 증오심을 갖게 되는 걸까? 처음 글을 읽기 시작할 땐 부도덕한 여인이 자기 범죄의 정당성을 둘러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 카타리나 블룸에 대한 연민으로 변해갔다. 살인자가 되어버린 그녀를 보며 안타깝지만 그런 형편에서 정당한 행위였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 자신도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일까?


지난해 12월 발생한 배우 이선균 자살 사건을 뉴스로 접하였다. 유흥업소 매니저에 의해 마약을 복용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금품을 뜯기고 경찰에서 하루 19시간이란 심문을 받은 이선균은 혈액과 모발에서 마약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얻은 정보인지 사건과 관계없는 조서에 적힌 개인적인 내용까지 여과 없이 발표한 기사에 모멸감을 느낀 이선균은 유서를 남기고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하였다. 멋지고 유순한 성격의 그는 세상의 이목이 자기에게 쏠린 현상만을 보고서도 자살의 길을 택하였다.

그때나 지금의 판박이 같은 우리 사회의 흐름을 보면서 과연 사회적 약자에게도 인권이 있는 것인가 의문을 품게 된다.


내가 읽은 명작

●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 한국산문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등단(2022) ● 워싱턴문인회 부회장 겸 수필 문학회 회장 (2024)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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