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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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무

2024-02-23 (금)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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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쳤던 눈이 다시 또 내리기 시작했어.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설경은 너무 예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이 생각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고 시작하는 소설 말이야. 중학생 때였는데, 노벨문학상 받은 사람의 작품이라고 서점에 달려가 사 읽었거든.”

눈 속에 갇힌 마을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그는 옛이야기를 하며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하늘은 옅은 회색이었고 땅은 설국이었다. 우리 동네는 화씨 80도였는데, 천안은 영하를 겨우 면했다니 멀긴 먼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욘포세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내게는 문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오랜 지기들이 있다. 나이, 성별, 연차를 넘어선 글벗들이다. 게 중에는 욘포세 종합선물세트를 보내주는 다정한 벗도 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나눌 벗도 있다. 행복한 일이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책 사보는 게 어려운 분들을 위해 도서 나눔을 시작했다. 다 읽은 책을 기증해 주십사 광고했더니 여기저기서 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내게 없는 책이 있어 틈틈이 읽다보니 평소보다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때마침 책 관리를 돕겠다고 자원하신 분이 계셔서 지난주에 모두 넘겨드렸다. 아무쪼록 도서 나눔이 잘 되어서 많은 분에게 혜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달라스엔 ‘북나라’라는 한국 책방이 하나 있다. 며칠 전, 위탁 판매를 맡겼던 책값을 정산해 놓았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여러모로 고마워서 신간을 몇 권 샀다. 연초면 사는 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제자가 선물한 책까지 읽어야 할 책이 많아졌다. 주로 낮에 읽고 밤에 쓰니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니라 주독야사(晝讀夜寫)인가? 습관이 잘못 들어서 거꾸로 사는데, 지난달엔 청탁 원고 쓰느라 혀 밑이 노랗게 곪았다. 유난히 안 써질 때가 있다. 모든 작가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쓰지 않을까 싶다.

지인이 작품집을 출간했다. 신문사에서 실어주는 신간 소개는 한계가 있고 스스로 홍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말은 안 해도 속이 탔을 것이다. 그녀의 책 소개가 달린 페이스북 어딘가에 페이스북 친구가 많은 분은 5천 명이던데, 5천 권만 팔려도 좋지 않을까. 작가와 친구를 맺었으면 그 작가 책 한 권쯤 사 읽는 게 예의 아니겠냐며 오지랖 형 댓글을 달았다. 책 한권이 나올 때까지의 고통과 노력에 비하면 책값이 너무 싸다. 그보다 더 슬픈 건 종이 책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다. 선인세 받는 작가들도 힘들어 하는데 자비출판 작가는 말해 무엇할까. 그러니 작가들끼리 라도 서로 사주고 힘이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오후 5시30분쯤 되니 앞집 지붕 위에 내려앉았던 해가 툭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환했던 테이블이 생기를 잃었다. 글씨가 안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읽던 책을 덮었다. 일몰 후 테이블은 뭐랄까, 형광등 아래 있다가 호롱불 아래로 옮긴 것 같달까. 뭔가 아른아른한 느낌이다. 창가에 앉아 햇살이 그어주는 빗금을 따라가며 책을 읽을 때 행복을 느낀다. 서둘러 떠나는 해가 아쉽긴 하지만, 허락한 시간 만큼만 감사히 쓰고 내일의 해를 기다리는 것도 설레는 일이다.

지난가을까지 풍성한 나뭇잎으로 병풍 역할을 해 주었던 백일홍은 나목이 되었다. 앙상한 가지조차 전지를 해서 그 나무라고 믿기지 않는다. 그대로 두면 너무 웃자라서 매년 자르는데도 때가 되면 생가지에서 가지가 생기고 새잎이 돋고 꽃이 피어 어김없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한다. 독서도 그런 것 같다.그가 설경을 보고 중학교 때 읽었던 설국의 문장을 적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안에 남아 평생을 함께 하는 거다. 기쁨으로, 슬픔으로, 행복으로, 때론 그리움으로.

그런 나무 하나 마음에 심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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