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LA 문화예술계는 ‘코리안 아티스트’ 세상이다. 포문은 UCLA 해머뮤지엄이 열었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LA순회전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가 개막했다. 지난해 성황을 이뤘던 LA카운티뮤지엄의 한국 근대미술전 ‘사이의 공간’과 샌디에고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에 이은 한국미술사를 조명하는 전시다.
한국 미술전이 끝나면 할리웃보울을 필두로 LA 오페라가 한인들을 주역으로 공연을 펼친다. 2024 할리웃보울 시즌에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돌풍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하모닉과 협연을 한다. 아시안 최초로 클래식계 노벨상인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수상한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소품을 LA필이 연주하고 바이얼리니스트 김선욱과 클라라 주미 강, 그리고 첼리스트 최하영 3명의 유망 솔리스트들이 할리웃보울 무대에 함께 선다.
다음은 LA오페라 주역들이다. 이번 시즌 도밍고 콜번 스타인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 출신인 한인 바리톤 윤기훈이 LA오페라 무대로 돌아왔다. 오는 4월6일 개막하는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춘희)’에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역으로 출연한다.
2024/25 시즌 한인 성악가들의 활약은 더욱더 눈부시다. 시즌 개막작이 한인 소프라노 카라 손이 초초상을 노래하는 푸치니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나비부인)’이다. 칼 손은 유럽과 호주 시드니 등지에서 초초상만 수 없이 연기한 국제적인 명성의 푸치니 오페라 가수다. 이어 메트 오페라 콩쿠르 우승자인 테너 듀크 김이 로미오역을 맡은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코리안 파워를 이어간다. 구노 오페라는 13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LA오페라의 야심작이다.
코리안 아티스트 작품들만 챙겨봐도 문화적 소양이 저절로 쌓이는 한 해다. 지난 주 해머뮤지엄에 도착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을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학예연구관은 “아방가르드, 전위와 실험이 이번 전시의 키워드이다 보니 원래 북미를 돌고 귀국 보고전을 해오던 순회전이 처음으로 서울에서 먼저 공개되었다”며 “오리지널 콘텐츠 국가로 이 전시를 보여주고 연구자와 기획자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고 싶었고 좀더 촘촘히 채워 뉴욕과 LA로 오게 됐다”고 밝혔다. 관객들의 반응이 더해져 내용이 더 충실해져 LA를 찾았다는 의미다. 이 전시는 파격적인 행위예술로 생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키스 미’의 아티스트 고 정강자를 국제적으로 재조명시켰다. 한국의 아라리오뮤지엄이 정강자 자서전적 에세이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Dear Dream, Fantasy, and Challenge·1990)로 개인전을 열었고 영국 런던의 프리즈 아트페어는 주요 여성작가를 기리는 ‘모던 우먼’ 섹션에 유일한 아시안 작가로 선정했다.
올해 시상식 시즌 승승장구하고 있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야외조각공원이 등장한다. 이민을 떠나기 전 어머니의 제의로 만난 꼬마 데이트를 하게 된 초등학생 나영과 해성이 이일호 작가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응시’(New Gazing at Being·1994) 조각을 놀이터 삼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일호 작가는 간단명료한 표현 방법으로 인간의 성을 표현하는 조각가다.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표현으로 초현실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놀아도 미술관에서 뛰어 놀게 하던 이민자 부모의 예술 사랑이 자식 세대에서 꽃을 피운 느낌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다음달 10일 개최되는 제96회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방탄소년단 멤버 전원이 군입대를 한 후 K-팝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생긴 빈틈을 K-클래식과 K-아트가 넘치게 채워주고 있다. 해머 뮤지엄 전시 프리뷰에 참석한 현대국립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인터뷰에서 “한국 미술전이 해외로 나오기 위해서는 기금이 확보돼야 한다. 초대 받는 해외의 미술관 측에서 많은 부분을 담당해주지만 우리도 그 만큼의 기금이 필요해 준비 중에 있다. 무엇보다도 전시에 대한 해외의 반응이 중요한데 해외에 계시는 한인들의 반응과 후원, 응원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미주 한인들의 관람을 독려했다.
이민 와서 사는 게 바빠 잊어버렸던 한국을 미술전시로, 영화로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한인 아티스트들이 주도하는 LA 미술·음악계를 보니 K-컬처 붐이 여전히 진행 중임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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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