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업을 운영하면서 수천명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억만장자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억만장자가 매출감소와 경비절감 등을 이유로 직원들을 대거 감원하고 남은 직원들의 월급도 큰 폭으로 감봉했다. 여기에 그동안 지역사회와 단체에 기부했던 수백만달러 기부금도 싹 없앴다. 이 기업은 또 경쟁사를 상대로 직원과 고객 빼오기 등의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 억만장자는 그러면서 여전히 대저택에 살면서 여행, 외식, 샤핑을 즐긴다. 반면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직원들과 월급이 감봉된 직원들은 당장 렌트와 모기지 페이먼트를 내지 못해 퇴거나 차압을 당할 걱정을 해야 하고 식탁에 올릴 음식을 줄이고 자녀들을 위한 옷과 운동화 구입 등도 미뤄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정말 이 억만장자의 ‘엄살’에 동정심을 느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편·상호관세를 중심으로 한 최근 ‘미국 우선주의’ 경제정책에 미국민은 물론 전 서계가 느끼는 충격과 공포감을 풍자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무역체계가 붕괴 위기를 향해 가고 있고 전 세계 증시와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이 미국과 미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가장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는 이들은 바로 지난 11월 대선에서 그를 대거 지지했던 서민층과 중산층이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편·상호 관세를 간단하게 ‘경제 킬러’로 규정한다. 연방정부는 막대한 관세 수익을 누리겠지만 관세에 따른 상품 상승 비용은 오로지 소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특히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악화는 미국민들에게 월급 감봉이나 수입 감소와 똑같다. 월가는 트럼프 관세로 인해 미국 가구가 연 평균 5,000달러를 생활비로 추가로 지출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를 상대로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이 ‘이용을 당하고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역적자는 경제 호황과 제조업 기반 악화가 주요 요인이다. 그동안 미국은 높은 임금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각종 공산품과 농식품을 생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 등에서 빨아들였다. 국제 무역은 바로 이런 것이다. 미국은 저렴한 공산품을 수입하는 대신 전 세계에 하이테크 제품과 무기 등을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팍스 아메리카나)이고 당분간 이 위치를 위협할 국가는 없다. 2위 중국이 추격하고 있다고 하지만 오랜 기간 미국을 추월하지 못할 것이다.
기자가 이민 왔던 1970년대 미국을 생각해보면 지금과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때는 미국이 참 풍족하고 넉넉했고 인심도 후했다. 물질적으로도 그랬지만 정부와 국민의 정서도 그랬다.
전 세계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원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것을 당연시했다. 손해를 좀 보더라도 말이다.
의사, 간호사와 약사 등은 원하면 영주권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약사였던 기자의 어머니도 그렇게 쉽게 영주권을 받아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올 수 있었다. 슈퍼파워로서 조금 더 양보하고 베풀면서 전 세계 국가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통해 무역적자를 일거에 해소하기 원한다. 또 전 세계 기업들을 상대로 미국에 공장에 짓고 일자리를 옮기라고 윽박지른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8년간 미국에 1,6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주로 임금이 높은 제조업 위주로 미 전국에서 80만개 일자리를 창출했다. 반면 한국은 작은 중소 도시 규모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국이 전 세계 자금과 일자리를 빨아들이는 불평등한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아가 현 투자이민(EB-5) 제도를 폐지하고 500만달러를 내면 영주권을 주고 추후 시민권 취득까지 허용하는 ‘골드카드’(Gold Card) 정책 시행을 지난 2월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수익을 통해 연방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소득세를 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도 되면 정부인지 기업인지 헷갈릴 정도다.
소득세 폐지가 정말 현실화될지 극히 불투명하지만 경제학자들은 그 이전에 경기침체와 함께 물가가 오르는 최악의 경제 위기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적한다. ‘병 주고 약 준다’라는 말은 이럴 때 딱 맞는 것 같다.
‘미국만 이기면 된다’ ‘전 세계는 더 가난해져도 미국만 부강하면 된다’는 트럼프의 아집과 독단이 만든 ‘미국 우선주의’ 병폐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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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