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린래시

2024-01-25 (목) 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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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뒤 본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강한 리더’ 이미지, 보호무역주의, 반이민 정책 외에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증이 꼽힌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탄소 중립’ 정책이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제조업 위축,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자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그린래시(Greenlash)’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그린래시는 ‘녹색(green)’과 ‘반발(backlash)’을 합친 말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유럽에서 그린래시의 역습이 거세다. 네덜란드에서는 질소 배출 감축에 반대하는 신생 정당 ‘농민·시민당(BBB)’이 지난해 3월 상원 선거에서 제1당을 차지했다. 독일의 경우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하는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이 20%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의 반발에 밀려 탄소 중립 후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신규 배기가스 규제안인 ‘유로7’에 잠정 합의했지만 승용차와 승합차 배출 기준은 유로6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당초 계획보다 규제를 완화했다. 영국은 2030년 시행 예정이던 휘발유·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5년으로 연기했다.

탄소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 퇴출 작업도 늦어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보다 수위가 낮은 ‘탈화석연료 전환’을 합의하는 데 그쳤다. 아직 재생에너지는 생산 단가가 높고 투자를 늘려도 전력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각국은 유엔이 청정에너지로 인정한 원전의 활용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이탈리아·스웨덴·벨기에는 탈원전 기조를 철회하거나 보류했고 영국·프랑스·폴란드 등은 속속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차원의 그린래시 현상을 지켜보면서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역할 분담 등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믹스’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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