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러분이 원하는 진짜 정치인 되겠다”

2023-11-05 (일)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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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 주 상원 37지구 사담 살림 후보

▶ 민주당 예비선거 이변의 주인공

“여러분이 원하는 진짜 정치인 되겠다”
선거구 재조정에 따른 버지니아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했던 가운데 지난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베테랑 중진 의원을 누르고 이변의 주인공이 된 신인 정치인 사담 살림(Saddam Salim·사진) 후보가 지난 1일 본보를 방문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민 온 그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이방인이었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는 당당히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남다른 이민 스토리가 화제다. 성장 과정이 궁금하다.
▲이민자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이며 나도 마찬가지다. 1990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으며 8살 때 대홍수를 겪었다.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가족은 2000년 미국에 왔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부모님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언어도 문화도 생경한 미국이민을 결심한 것이다.

최저 임금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오던 가운데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임대주택이 고급콘도로 재개발 되면서 하루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됐다. 거리로 쫓겨난 우리는 한동안 DC에서 노숙자로 지내다 지인의 도움으로 버지니아 폴스처치의 지하실 방을 구했고 이후 페어팩스 카운티의 저소득층 지원프로그램으로 간신히 거처를 마련했다.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때문에 저소득층 가정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 누군가의 도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등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정치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저소득층 임대주택에 살면서 버스를 타고 일하러 다니셨던 부모님, 아버지는 방글라데시에서 무역 회사에 다니셨지만 미국에 와서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20년을 식당에서 일하다 보니 이제는 셰프가 되셨다. 어머니도 가게 점원, 건물 청소 등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하셨다. 그러다 심각한 병을 얻어 몇 해 전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하셨지만 막대한 병원비는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우리 가족에게 충격이자 절망이었다.

5학년 때 미국에 온 나는 영어 한마디 못했지만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열심히 공부했고 폴스처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도 했고 우수학생 표창도 받았다. 그러나 학비 부담 때문에 4년제 대학 대신 노바(NOVA) 커뮤니티 칼리지를 선택해 일하면서 공부했고 저축한 돈으로 조지메이슨 대학에 편입해 공공행정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은 예산·재정 전문가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렇게 소수계 이민자로 살면서 직접 경험한 주택문제를 비롯해 의료비, 학비 문제 등 내가 받았던 도움을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카운티의 지원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했고 병원과 보험회사에 수차례 문의하면서 병원비 부담을 줄일 수 있었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언어나 문화가 낯선 이민자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반복하지 않고 편안하게 도움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의회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처음 출마한 신인 정치인이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 현역 의원을 이겼다. 승리의 비결은?
▲진심은 통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캠페인이 유권자들을 움직였으며 예비선거였음에도 투표율이 높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챕 피터슨 의원은 페어팩스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나 이번에 새로 바뀐 주 상원 37지구에는 폴스처치 지역이 새로 추가됐다. 페어팩스는 50대 이상 유권자가 주류인 반면 폴스처치는 20~30대 젊은 층이 다수이기 때문에 총기규제 등 민주당 이슈에 적극적인 후보가 유리했다고 본다. 결국 부동층을 움직여 그들이 투표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 승리의 비결이며 세대교체에 따른 변화도 기회가 됐다.

지역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있다.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며 여러분이 원하는 진짜 정치인이 되겠다.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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