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고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영전에

2023-09-18 (월) 조광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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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서 가셨다니요, 오늘(9/11) 자택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접했습니다. 때가 되면 떠나는 게 인생인 줄 알건만 그 슬픈 정을 가누기 어려운 걸 어찌하오리까?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다니요? 저보다 9년 연상이셨던 님이셨기에 저 또한 떠날 날도 멀지 않았구나 하는 허무함과 함께 인생의 덧없음이 새삼 가슴을 시리게 하며 슬픔에 젖습니다.

님께서는 형이 없는 저에게는 형님같이 느껴지는 존재로 아버님 관련 상의드릴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님께 달려가 의논하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분이셨기에 더욱 허전하고 애통하기만 합니다.

마흔여덟이란 짧은 생을 살고 가신 저희 아버님께서 타계하시자 고려대학교 교정에서 거행된 시인협회와 고려대학교 합동 영결식을 위해 동분서주하시고 제자를 대표해서 조사를 읽으시던 그 때 당시의 님의 모습, 향리 주실에 건립된 ‘지훈문학관’ 개관식에 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계시던 모습, 저희 어머님 구순연때 저희 가족들 곁을 지켜주셨던 든든한 님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의 중학시절, 성북동 저희집 사랑방에서 아버지께서 당신을 포함한 제자들과 술상을 앞에 놓고 고담준론과 유머로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던 “이 길로 가면 주막이 있겠지요? 나그네 가는 길에 주막이 없으랴“ 로 시작하는 저희 아버님의 시 ‘밤길’을 읊으시던 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돕니다. “나도 대학에 들어가면 아버님같은 스승님 모시고 저렇게 멋지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 게야.” 기대했었으나 저는 그런 스승을 만나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 이제 팔십 문턱에 서서 그 시절 그 풍경을 종종 그리워하곤 했답니다. 가족에게나 자식들에게는 유언(遺言) 한마디 남기지 않으신 채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님께는 유언을 남기셨다지요?

“이제 민연(고려대학교 부설 민족문화연구소)은 자네가 알아서 맡아주게” 하시면서 “앞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고려대학교를 와서 보아야 한국을 알게 되고, 고려대학을 찾아오는 사람은 민연을 와서 보아야 고려대학을 알게 되도록 해야 하네. 자네가 이 일을 꼭 이루어 주게. 자네는 할 수 있다고 믿네.”라고 아버님께서는 병상에서 힘들게 말씀 하셨다지요.
이제 하늘나라에 가셔서 저희 아버님을 뵙게되면 “그 유언을 훌륭히 멋지게 다 이루어놓고 왔습니다”고 마음껏 자랑하실 수 있어 좋으시겠습니다. 스승께서 얼마나 기뻐 하실가요?

아버님을 일찍 여읜 저는 생전에 님과의 대화에서나 글을 통해서 님께서 저희 아버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지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담과 향기로운 일화들을 저에게 전해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버님 제자분들 중 가장 연장자로, 리더로서 아버님 타계 후 후배 제자분들과 함께 서울 남산과 향리 주실마을에 조지훈 시비 건립, <<조지훈전집>> 간행, ‘지훈상’ 제정 등에 크게 기여하시고, 저희 아버님께서 선정기준이 까다롭기로 정평있는 ’이달의 문화 인물‘(6월)로 선정되었을 때는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뜻깊고 멋지게 치르시는등 스승의 추모 및 기념사업에 열과 성을 다하셨습나다.

2020년에는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기획한 아버님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를 위해 님께서는 소중히 간직해 오던 스승의 친필 ‘사직서’를 박물관에 기증해주시기도 하셨지요. 생전에 ’조지훈 기념사업회‘라는 법인체를 못만들어 아쉽다고 하셨지요. 이제 그런 걱정일랑 놓으시고 편히 떠나세요.

아버님을 통해 님과 맺어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멀리서 애도의 마음을 담아 국화 한송이 구름에 실어 님을 보내드립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드리지 못함을 부디 용서하여 주소서.

광렬, 삼가 님의 사진 앞에 향을 사르며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조광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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