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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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공원을 산책하다

2023-09-05 (화) 07:17:53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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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한점 없는 파란 하늘아래 미풍이 살랑대는 8월의 끝자락 주말이다. 매일 아침이면 습관처럼 간편한 차림으로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할 양으로 집을 나서는데 아들의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날씨도 좋은데 D. C.근교의 식물원에 나들이 가자는 것이다. 얼씨구나 하며 이럴 땐 두말없이 따라 나서는 것이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부모의 배려라는 생각으로 따라 나섰다.
두 손녀의 여름 방학을 맞아 며느리가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한국의 친정 나들이를 나갔는데 둘째 손녀는 태어나 처음 외가 집을 가는 길이고 첫째 역시 두번째 방문이라 해도 처음 한국 방문은 기억이 없는 초행이라 어른 아이 모두가 한껏 기대를 안고 떠난 여행이다.

아들은 최근 업무가 바뀐 회사 일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시기여서 한국 방문에 동참하지 못했는데 이 참에 주말마다 부모님과 함께 하려는 지 외식은 물론 야외 나들이도 틈틈이 챙긴다.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 여 차를 달려 처음 도착 한 곳은 워싱턴 D.C.와 메릴랜드 사이에 있는 국립 식물원 (National Arboretum)이다. 이미 여기 저기에는 주말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나들이 객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처음 들어 간 전시장에는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기이하고 오묘한 수석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수집가들이 발품을 팔아 자연에서 발견한 특이한 형태의 문양과 색갈을 이용해 큰 산을 옮겨 놓은 듯한 수석 뿐 아니라 앙증스럽고 오밀조밀한 작품들이 장인들의 손을 거쳐 모두 작은 돌에서 새롭게 빚어진 것들이라 생각하니 값의 유무를 따질 수 없는 귀한 보물들처럼 보였다.

다음 전시관에는 분재의 특성상 후끈한 전시장 안에 단아하고 수려한 식물들이 보란듯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내에서 키워 관람객들의 눈 높이로 시렁 위에 올려 놓고 꾹꾹 눌러 키운 키 작은 분재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저 마다 기풍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두 곳 모두 한국에서 전시장을 통해 많이 보았던 작품들이지만 오랫만에 색다른 멋을 맛보는 모처럼의 즐거움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야생화가 만발한 자연 그대로의 평원이 시야에 펼쳐진다. 저 멀리 1958년 국회 의사당의 동문 입구를 개축하면서 옮겨 놓은 석조 열주(pillar)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원래 있던 22개의 기둥을 이곳에 옮겨 놓은 것들로 마치 희랍 신전의 유적지처럼 우뚝 서있어 넓은 평원에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어 근처의 아나코스티아 강변으로 차를 돌려 포토맥강의 지류를 따라 만들어진 공원에 들어섰다. 붐비지 않고 조용한 공원이라 가끔 아들이 자전거를 타러 왔다는 이곳에, 우리 옆으로 바이크 족들이 들락거리는 이 울창한 숲길을 나 역시 강을 따라 걷다 보니 산책의 묘미를 한껏 만끽하는 하루였다

지친 다리도 쉴 겸 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느린 듯 둔탁하게 흐르는 강물 위에 한가로이 떠 있는 강태공들을 졸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공원의 적막감 속에 빠져 들었다. 몸집 큰 거미 한 마리가 꽤나 무거운 나뭇가지를 자신이 쳐 놓은 거미줄에 메어 달고 공중에서 이리저리 아슬아슬 곡예를 하고 있는 모양새가…
수도 D.C.근교에는 많은 전시장과 공원들이 있음에도 내가 가본 곳은 그 일부분일 뿐 아직도 내 발길을 기다리고 있을 크고 작은 명소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뜨거운 여름 한낮의 나들이였다.

<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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