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문가 에세이] 식민사관과 민족정기

2023-08-25 (금) 써니 리/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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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 장담하건대, 조선국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서로 이간질 하며 노예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떠나면서 남긴 섬뜩하고 저주스런 말이다. 그의 신념에 찬 말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8.15 해방이래 대한민국의 민족정기는 말할 수 없이 침체되었다. 상승세를 타며 세계로 뻗어나가던 국운도 참담할 정도로 꺾였다. 일본에 대한 굴종외교정책이 정점을 찍으며 대한민국의 근간을 모조리 뒤흔들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사관이 다시 활개를 치며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를 방불케 한다.


현재 친일 일색의 대한민국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사관을 반드시 짚어보아야 한다. 이영훈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류석춘 교수의 위안부 발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식민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더욱이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뉴라이트 학자들이 친일, 친미굴종외교를 추진했던 이명박정부를 넘어서 윤석열정부에서 그 정점을 찍고 있다. 뉴라이트의 선구자이자 대부역할을 한 사람이 서울대 이병도교수와 윤석열의 부친인 연세대 윤기중교수다. 그들이 추종한 식민사관은 일본제국이 조선을 침략하고 통치하면서 만들어낸 역사인식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식민지배를 위해 한국사를 어떻게 재편했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첫째,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연구와 역사학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근대사회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은 침략과 통치의 목적으로 식민지에 대한 각종 연구과정에서 정보들이 축적되자 학문으로 정립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식민지를 발전시킨다는 근대 ‘문명’의 관점에서 식민지를 ‘야만’으로 정의하며 식민통치를 ‘문명개화’ 또는 ‘계몽’으로 미화했다.

둘째,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정당성과 한국사 왜곡이다. 조선의 식민지화를 역사적 귀결로 본 당파성론, 정체성론 (停滯性論), 타율성론이다. 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한 주요 원인은 경제조직과 경제단위가 낙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개인적 이득과 권력 독점을 위해 고질병적인 정쟁과 당쟁만을 일삼아 나라가 혼란하고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쟁으로 얼룩져 발전이 지연되고 멈춘 조선역사의 정체성은 외부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타율성과 연결되었다. 정쟁만 일삼던 구시대의 폐습을 일소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며 식민지배를 합리화한 것이다.

셋째, 한일병합 이후 식민사관의 전개과정이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각종 역사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연구하여 식민통치를 위한 자료로 삼고자 1915년부터 중추원에서 ‘조선반도사’ 편찬작업을 한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민족주의자들의 역사연구가 가열되자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식민사관을 중심으로 35권에 달하는 ‘조선사’를 간행한다.
일본 도요타 기업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설립한 서울대 안병직교수와 그의 수제자 이영훈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선두에 있다.

뉴라이트 정책은 198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실패한 정책으로 감세, 정부의 기능 축소, 공기업의 민영화, 복지의 축소 등을 통해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했으나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복지가 처참할 수준으로 떨어지며 국가경제가 붕괴되는 대참사를 겪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신자유주의와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운 한국판 뉴라이트 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탄내고 친일굴종외교와 대북강경정책으로 전쟁을 불사하며 한반도 안보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한국민이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아베 노부유키의 망령이 되살아 난 것이다.

<써니 리/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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