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최고의 미덕 겸손

2023-08-22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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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문 중 일요일을 맞아 친구의 교회에 참여하였다. 오래 된 교회로 신발을 벗고 마루 방에 앉아 예배를 드리게 되어있다. 신발을 벗으니까 한 노인이 “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내가 벗은 신을 자기가 들어 신발장에 올려놓았다.

뒤에 내 친구로부터 그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그 노인은 현 일본 정부의 체신부 장관인데 교회서는 매주일 교인들의 신발을 신발장에 올려놓고 누구의 신발을 어느 위치에 놓는 것까지 정해있어 각자가 나갈 때 자기의 신발을 얼른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겸손한 장관 노인인가! 나는 그 날 목사의 설교보다 그 노인의 겸손을 보고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왔다. 나뿐이랴. 그 교회 온 교우들의 귀범이 되고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이 그토록 겸손한 사람이었다. 잘 난 사람들을 제자로 뽑은 것이 아니다. 고기잡이 어부들 곧 노동자들을 제자로 뽑았다.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고 예수 자신도 30세까지 목수 일을 하던 노동자였다.

그가 도운 사람들도 맹인 창녀 보행 장애자 등 변두리 인생들이었다. 죽을 때도 사형수들과 함께 십자가 처형이란 가장 치욕스런 방법으로 죽었다. 그는 끝까지 반항을 안 하고 겸손하게 자기의 사명을 다하였다.

서양 화가들은 성화(聖畵)라는 것을 많이 그렸다. 예수의 그림을 화가의 상상력으로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성화 중 인상적인 그림은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림이다. 제자 앞에 꿇어 앉아서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 열심히 발을 씻고 있다.

제자는 황송한 표정이고 예수는 정성껏 발을 씻는 노동자의 모습이다. 예수의 모습을 그림으로 영화로 많은 모습들을 시도 하였는데 그 공통점은 예수의 겸손을 나타내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성경과 찬송가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 믿음이요 예배라고 가르친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의 히브리 종교는 예루살렘 성에 가서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이 경배의 모습이었다. 이 행위는 자기의 겸손과 복종을 의미한 것이다. 스스로를 아프게 해야 정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고대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섬나라들에서 자기의 몸에 상처를 입히거나 살아있는 여인을 불 속에 넣는 잔인한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희생의 제물이라 불렸다. 귀신이 산 희생을 보아야 마음이 풀린다는 이론에서이다. 예수의 죽음도 산 제물로 바쳐졌다고 성경은 십자가를 표현한다. 제물이 있어야 하나님의 용서가 가능하다는 이론에서이다.

내가 18세 때 한국전쟁이 났다. 부산까지 피난하였는데 우연히 훌륭한 목사님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좌천동 빈민굴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구호품과 약을 구해다가 그들과 함께 사는 분이다. 감동을 받은 나는 매 일요일 오후 그 분 동네에 가서 어린 아이들을 모아 노래도 가르치고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전쟁 당시 나는 법과 대학 1학년이었는데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신학교로 전학한 것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보고 법률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음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한 사람 문학 동지이며 목사인 존경스런 친구가 있었다. 그는 매 일요일 한강 기슭에 있는 넝마주이 소년들의 마을에 가서 불쌍한 소년들을 도우며 식량과 약품을 구해다 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그는 매 일요일 실천하였다. 세상에는 숨은 위인이 많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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