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알로하, 하와이

2023-08-1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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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Aloha)는 사랑, 안녕이란 하와이 말이다. 이 알로하, 하와이에 가면 머리에 노란 하이비커스 꽃을, 목에는 꽃과 조개로 만든 레이를 건 여성이 훌라춤을 추며 ‘알로하오에’를 부를 것 같다. 신혼여행지의 성지이자 폴리네시아어로 ‘신이 있는 장소’ 라는 뜻의 하와이 마우이섬이 지난 8일 일어난 산불로 초토화가 되었다.

마우이섬 서부 해안에서 시작된 산불은 허리케인 도라의 강풍을 타고 해안가 마을 라하이나를 순식간에 태워버려 사망자 수가 100명을 넘어섰고 앞으로 10일간 사망자 수가 200명 안팎으로 육박할 수 있다고 한다. 실종자도 1,300명이다. 산불의 위력은 금속까지 녹일 정도라는데 불에 탄 건물 잔해에서 회색 잿더미가 된 유해를 찾느라고 사체 탐지견이 투입되었다.

더구나 하와이 왕국의 옛수도인 라하이나 지역의 고대문화가 몽땅 재가 되었다고 하니 아쉽기짝이 없다. 하와이 제도를 최초로 통일한 카메하메하 대왕, 500년 역사의 마지막 왕인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자취가 있는 이곳은 미국의 유일한 왕조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1959년 8월21일 미국의 50번째 주로 합병되면서 하와이 왕국은 없어졌다.)


산불의 연기와 미세먼지가 사람들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초미세먼지는 코와 입을 통해 폐로 들어갈 수 있고 혈류로 들어가 천식이나 심장질환 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하와이 출신 할리웃 배우 제이슨 모모아는 ‘마우이는 지금 당신이 휴가를 보낼만한 장소가 아니다’며 하와이 여행 자제를 당부, 상처를 치유하고 슬퍼하며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산불 피해 복구에 전력에 다하는 주민들을 돕고자 마우이섬 재건을 위한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광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마우이섬 인근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휴가를 즐기는 ‘내로남불’ 들이 있다.

특히 세계적 호텔체인 힐튼 그룹 상속자 패리스 힐튼은 12일 마우이섬 한 리조트 근처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수영을 하는 한편 구호물품을 대피소에 전달했다고 한다. ‘병주고 약주기’다.

하와이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곳이다. 뉴욕한인들이 한국을 오가면서 하와이에 들렀다 가기도 하고 신혼여행지와 골프 여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무엇보다도 한인 이민자가 첫발을 디딘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1903년 1월13일 한인 102명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이민선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1902년 12월부터 1905년 11월17일까지(일본제국이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한 을사조약 체결 후에 하와이 이민금지) 2년 6개월동안 7,226명의 조선인이 건너왔다.

1913년 당시 미주전체 한인 9,000명 중 하와이 한인이 6,000명 정도였다. 이들은 노동자, 소작농, 식료잡화상, 여관업 등을 하면서 조국에 독립자금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13년 2월3일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입항, 기독교 정신, 독립사상 고취를 위해 한글잡지‘태평양’을 발간하며 하와이한인교회, 한인기독학원, 동지회 등을 만들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 하와이에서 5년간 머물던 중 1960년 5월29일 호놀룰루 마우타네리아 요양원에서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미국생활 36년 중 25년을 하와이에서 보냈다.


또한 미국인들에게 잊지못할 곳이 오하우섬 남쪽 해안 진주만이다. 1941년 12월7일 일요일 아침, 일본제국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기습, 수백 대의 일본 전투기가 미 태평양 함대의 기지를 무차별 폭격하여 미군 2,390명이 사망했다.

이 진주만 사건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과 나치 독일 등 동맹국 주축국을 패망으로 이끌었고 한국의 해방을 가져왔다. 군함 애리조나호가 침몰한 바다 바로 위에 애리조나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하와이는 이래저래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역사가 서린 곳이다. 그 사연 많은 하와이의 섬이 불바다가 된 모습은 참담하기 이를데 없다. 하루빨리 복구되어 하와이가 제 모습을 찾기를 바란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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