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랗던 스펀지가 음식 찌꺼기에 찌들어 거무튀튀해지더니 급기야 스펀지 조각이 떨어져나왔다. 싱크대에 흩어진 작은 조각들을 보며 이것들이 물에 쓸려가 강과 바다에 이르면 어쩌나 싶어 그것들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새것을 꺼내 열려다, 얼마 전 얻어온 수세미 생각이 났다. 한 시인께서 한국에선 예전에 수세미를 키워 그 열매를 말려 자연 세척 도구로 써왔다며 씨가 가득 든 말린 수세미를 주셨다. 씨를 물에 담갔다가 심으면 덩굴로 자라니 보기도 좋고, 열매는 오이처럼 장아찌 담아 먹을 수도 있고, 말리면 나중에 수세미도 얻을 수 있으니 아주 좋다며 심어보라고 했다.
수세미를 잘라 씨를 빼내어 물에 담그고 자른 수세미로 설거지를 해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걸 모르고 그동안 돈을 주고 설거지 스펀지를 사서 썼다니!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을 버려두고 상업화된 이런 상품을 쓰게 되었을까 싶어 찾아보았다.
우리에겐 포스트잇과 같은 문구제품으로 익숙한 회사 3M이 20세기 초 미네소타 광업 제조 회사로 시작해 1940년대에 첫 상용 스크럽 스펀지를 소개했다. 당시 3M 직원인 리처드 드루(Richard Drew)가 천연고무 대체물을 개발하려고 시도하다 우연히 만들게 되었다 한다. 3M은 이 발명품을 “스카치-브라이트(Scotch-Brite)”라고 이름 붙였고, 그 효율성과 편리성으로 인해 빠르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문제는 이 스펀지를 만드는 원료 폴리우레탄 폼(Polyurethane foam)이 세척 능력은 탁월하지만, 석유 기반 플라스틱으로 전 세계적인 환경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폴리우레탄 폼 제조 과정에 이소시아네이트 등의 화학 물질을 사용하며, 이는 대기 오염을 악화하고 생산 시설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게다가, 폴리우레탄 폼으로 만든 이 스펀지들은 폐기되면 매립지와 해양에서 축적되며, 분해 과정에서 방출되는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야생동물, 심지어 식품 사슬에 침투한다. 이런 유해한 제품의 전 세계 시장수요가 2022년에 미화 65억 달러가 넘었고 2029년까지 90억 달러가 넘게 수요가 증가하리라 전망한다.
포장을 열지 않은 새 스펀지와 너덜너덜해진 낡은 것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더 이상 이 제품을 사지 않겠노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물에 불린 그 씨앗들을 덩굴이 자라 타고 올라갈 만한 마당 곳곳에 심었다.
일주일쯤 지나니 두 손을 활짝 편 아이 손처럼 떡잎이 옹기종기 열렸다. 수세미 씨가 싹을 잘 안 틔울 수도 있으니 여러 개를 함께 심으라고 한 충고를 따라, 많은 씨를 물에 불려 곳곳에 수십 개씩 심었는데, 그 씨앗이 모두 싹을 틔운 듯했다. 이 많은 걸 내 마당에 다 키울 수도 없고 이참에 ‘수세미 운동’을 시작해 봐야겠다 싶었다.
1960년대 한국에서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개발을 위해 ‘새마을운동’을 벌였듯이, 환경파괴로 악화되는 지구온난화, 자연재해와 생물 다양성 감소 등등의 문제에 맞서야 할 21세기엔 ‘자연으로 돌아가는 운동 (Back-to-Nature: BTN)’이 필요하다.
자연이 선사하는 수세미를 나누며 누구나 일상에 사용하는 세척용 스펀지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인식하게 하고, 그런 인식이 다른 미세 플라스틱의 유해성도 일깨워 점차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의 씨를 품었다.
모종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키워서 자란 열매를 그들이 또 다른 이들과 나누어 확산할 수 있기를 꿈꾸며, 나는 조심스레 옹기종기 모인 모종을 파내어 하나씩 나누어 작은 화분에 심었다.
친분이 있는 목사님 몇 분께 수십 개의 모종을 갖다 드리고, 가든 클럽 멤버들과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주고, 남은 모종들은 마당 주변에 옮겨 심었다. 아직은 키가 내 손바닥 한 뼘 남짓한 이 모종들이 쑥쑥 자라 풍성한 초록 덩굴이 되고, 수세미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상상하며 아침마다 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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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