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금년 80세니까 나도 노인으로 분류가 되겠지. 노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존재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 한국의 문화이다. 가끔 한국에 나가면 전철을 타게 되는데 경로석이 있다.
자리가 비어 있으면 주저 없이 앉는다. 그러다 임산부나 아이를 안고 올라온 젊은 부인을 보게 된다. 나도 노인이지만 자리를 양보한다. 그러면서 애국자란 호칭을 붙여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이 건네지고 이 아이를 하나보다는 둘을 기르면 더 좋을 때가 있다고 조언을 한다. 그러다 보면 긍정적인 답을 얻을 때가 더 많다.
스스로에게 존경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어른스런 모습이며 또 남에게 귀감을 가져오게 된다. 어른이 되면 말을 줄이고 이해력을 넓이며 지갑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못해도 관계 개선을 위해 처해지는 환경을 잘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며칠 전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한국노인회 회장을 찾아가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서 찾는 자리였다. 송구스런 표정으로 사죄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미리 준비한 사죄자의 사진을 들고 그 사진의 뺨을 때리는 퍼포먼스를,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서너 번 하는 것을 보면서 몹시 마음이 무거웠다. 과연 그래야만 해야 했는가? 중년의 여자가 찾아와 잘못을 사과하는 자리였다.
자리 앞에 놓인 명패를 보니 한국노인회 회장이라 쓰여 있었다. 명패가 보여 주듯이 한국의 노인을 대표하는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그 광경을 바라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이다. 노인은 당연히 그 사회에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른은 때론 관용과 어른스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노인인 내가 보아도 저것은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만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것을 보면서 노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었을까란 생각이 미치자 이것은 아닌 것 같다. 눈물이 쑥 쏟아지도록 나무랄 것은 나무라고 어른스런 뒷말이 따랐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부끄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꼭 그래야 했느냐 말이다.
좀 더 어른스런 방법은 없었을까? 더 나아가 존경도 받으며 멋지게 야단을 치는 방법은 없었을까. 어른은 어른스런 말과 행동이 뒤따라야 대접도 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그 자리가 분명 높은 자리임에는 분명한데 과연 그런 자리에 그런 인격과 매너를 가진 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얻어 쓴 자리인가?
참으로 한국 사회의 면면이 상식적이지 않고 자리에 앉을 자가 제 자리를 지키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나도 노인이기에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는 일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존경을 받을 말과 행동이 준비된 인격을 만들어 가자. 언제 어디에서도 자신도 지키며 동료들의 품위를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위치는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지키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렇고 선생과 제자 간에도 그렇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니 목사인 내 자신이 목사들은 어떻게 처신을 하고 있는지 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보는 것, 듣는 것, 행동하는 것 특히 말하는 것에 한계를 알자.
이민사회를 이루며 자신의 격에 맞는 삶을 살지를 못했다고 자신을 망각하고 살지는 말자.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격을 맞춰 살면서 이민사회를 바르게 인도하는 노인이 되자. 나부터 그런 사고를 가지고 행동하고 말함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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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