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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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한가족:피붙이가 원수일 수 없다”

2023-06-29 (목) 손수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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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자씨선교회 , 한반도 평화통일 심포지엄 줌으로 개최

▶ 유석종 목사 “원수까지 사랑하는 믿음 가져야 통일 가능”

“한민족 한가족:피붙이가 원수일 수 없다”

겨자씨선교회가 25일 줌으로 평화통일 심포지엄을 갖고있다.

한반도 화해와 통일 주제의 겨자씨선교회(회장 김환중 목사. 이사장 김홍기 목사) 주최의 평화통일 심포지엄이 6월 25일 줌으로 개최 됐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임봉대 목사를 비롯 함성국 박사,아틀란타의 권희순 목사, 스탁톤의 이성호 목사등 35명이 참여했다. 다음 내용은 강사인 유석종 목사 (전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담임)가 심포지엄에서 발표한것을 요약 정리한것이다.

심포지엄 발표요지


워싱톤주 시애틀에 있는 유석종 목사입니다.오늘 겨자씨 선교회 주최 평화통일 심포지움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저는 이념적 대결 속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서게 된 저의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문제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73년 전바로 오늘 6.25 동란이 발발했을 때, 저의 가족은 경기도 파주군 문산에 살고 있었습니다.저의 어머니 고향은 개성이고, 아버지 고향은 개풍군 풍덕입니다.어머니는 개성에 있는 감리교 Mission School, 호스돈여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보모로 있을 때,개성의 송도중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교를 다니고있던 아버지를 만나,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장단지역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왜정말기에 목회사역을 중단하고, 고랑포에서 구세약국을 운영하다가 문산으로 옮겨와 그곳에서 구세약국을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국민학교 선생,파주군청 촉탁,대한부인회 파주군 지부장 등 사회활동을 계속하셨고, 6.25 전쟁이 터질 때까지 대한부인회 총회장 박순천씨 밑에서 농촌 계몽운동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어머니는 체구가 작은데 아들 다섯,딸 다섯을 낳으셨습니다. 아들 셋이 어릴 때병으로 죽고,나머지7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아버지는 8.15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조용히 약국만 운영하셨는데, 해방이 되자 대한국민회 파주군지부장으로서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목사로서 반공연설을 많이 하셨습니다.

6.25동란이 가져온 비극

1950년 6월 25일,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38선에서 하루거리에 있는 문산은 즉시 북한군에 함락되고, 저의 집안은 글자 그대로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큰매부는 ,1949년에 월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문산집에서공산당에 납치되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공산당에 붙잡혀경찰서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다가 어디론가 끌려가다가 문산소학교에서 가르친 제자 간수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우리 가족의 비극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서울에 살던 큰누님은 UN연합군의 참전으로 인민군이 퇴각을 할 때, 남편을 따라 북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저의 둘째 누님도 6.25 전쟁 중에 북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처럼 저의 가족은 이념적 대결 속에서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아버지는 반공투사로 간주되어 공산당에 희생이 되었고,어머니는 공산치하에서 사형장에 끌려가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는데, 누님 둘은 공산주의가 좋다고 월북을 한 것입니다.

형제들의 흩어짐과 만남

어머니는 감리교신학교에서 전도사 과정을 거쳐 벽제감리교회 담임 전도사로 5년간 목회사역에 전념하게 됩니다.그러다가 어느 날 교인 집 잔치에 가서 식사를 하셨는데식중독에 걸려, 일 주일 동안 집에 누워 계시다가 별세하셨습니다. 갑자기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고아가 된 우리 5남매는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아홉 살배기 막내 남동생은 부모님이 잘 알던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 시애틀 미국 가정에 입양이 되었고,간호대학을졸업한 바로 밑의 여동생은 파독 간호사로 독일로 갔습니다. 그 아래 여동생은 대전의 사촌형님 댁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신학교를 다니던 저는 얼마 동안 어머니가 개척하여 시무하던 벽제교회를 받들다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숙식을 제공하는 가정에가정교사로 있으면서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는 장차 부흥목사가 되어, 전쟁을 치루고 지칠대로 지친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영적 부흥을 일으키겠다는 결심을 한후 감리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러 저희4 남매가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미국 가정에 입양된 남동생이 성인이 되어형제들을 모두 초청한 것입니다.그 결과 우리 5남매가 모두 시애틀 지역에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한민족 한가족:피붙이가 원수일 수 없다”

유석종 목사가 2004년 4월 북한을 방문하여 54년만에 만난 두 누이.<사진 유석종 목사>


54년만의 이산가족 상봉

그러던 중 1990년 어느 날, 평양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그것은 6.25때 북으로 간 큰 누님이 보낸 편지였습니다.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1989년 평양에서 세계청년대회 기간 중 북한 TV에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이 북조선에 있는 가족을 찾는다는 뉴스를 평양에 사는 저의 큰 누님이 보고 , 동생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희의 주소를 받아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4남매가 2004년 4월 평양을 방문하게 됩니다. 헤어진 지54년만에 다시 만나는 피붙이의상봉이었습니다. 7일 동안 우리는 두 누님과 함께 평양호텔에 유숙을 하면서,이북에 있는 아홉 조카들의 가족도 모두 만나 회식도 하고 같이 여행도 하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저희 4남매가 다시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15년 9월입니다.미국에서 간 우리 여섯 명,도합 18명이 3박 4일간의 금강산 여행은 끊겼던 혈육의 핏줄을 다시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7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살붙이가 원수일 수 없다 /하늘 땅이 변해도 사랑을 미움으로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불같이 사랑해야겠다” 내 가슴에서 계속 메아리쳐 울려 왔습니다.

소감

수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그곳 사람들과 접촉을 하면서 제 자신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기 전에 저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북한 공산당은내 아버지를 납치해가고 어머니마저 죽이려 했던 원수였습니다.북행길에 오른 두 누님에 대하서도 그리움보다는 원망과 적대감이 앞섰습니다.그런데 북조선을 몇 차례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과 접촉을 해보니,적으로,원수로 보이던 그들이,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누구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편견과 복수심으로 망하기만 바라던 그들을 주님의 눈으로,하나님의 마음으로 보고 대하게 되었습니다.“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새롭게 이해되었습니다.(마태 5:44)

맺는말

저는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우리의 마음,특히 기독교인들 한 사람,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작은 통일”이 이루어져야한다고 봅니다.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과 화해의 복음으로 바뀔 때 가능해집니다.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채워질 때만 가능합니다.
정치적통일은정치인들의 몫입니다.그러나 마음의 통일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나서서 이루어야 할 사명입니다.남한과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인들 한 사람 한사람 마음 속에서 이 작은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의 길이 빨라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개개인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통일은 겨자씨처럼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작은 겨자씨들이 온 누리에 심겨질 때,거기서 돋아나는 겨자씨 나무 가지들은 남북 경계선을 넘어 북한 땅에 이르기까지뻗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국의 평화통일은 우리의 힘만으로 이룩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지금도 통일의 날을 향해 역사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입니다.
“겨자씨 선교회”가 이 믿음 위에 굳게 서서,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음 밭에통일의 겨자씨를 심어줄 수 있기를소망합니다.

<손수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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