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60대가 돼 돌아보니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다. 철없던 시절에 그 노래가 가리키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가사)만 비틀어 남을 골려먹곤 했는데 이제는그게 수시로 나를 놀린다. 놀리는 정도가 아니다. 아프게 때린다.
헛것을 좇아 헛심만 쓴 듯한 내 인생, 그중에 제일 못난 짓은 40대 중반까지도 부처님 세상을 등지고 산 것이라고, 그나마 다행은 40대 중반에라도 부처님 세상에 다가서는 시늉을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나는 다음생에 또 사람몸을 받는다면 출가수행자가 되리라 서원해왔다. 이번생 은퇴출가도 있는데 사람몸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이 무슨 다음생 출가서원이냐는 핀잔이 들린다 싶으면 나는 거의 죽었다 겨우 살아난 부실건강을 으뜸방패로 치켜들었다. 부처님 도량에 큰도움은 못될망정 식충이가 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나름 겸손무침 딸림방패도 움켜들었다.
최근에 두 방패 다 찌그러졌다. 더 센 창의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내 손 악력이 가뭇없이 사라져 둘 다 바닥에 팽개쳐졌다. 5월9일자 불교신문에 난 동명 스님(조계종 원로의원) 특별기고문 “상월결사 인도순례, 해단을 맞아”를 읽으면서다. 5월 26일자 법보신문에 난 “서울 전등선원 회주 동명 스님” 제하의 부처님오신날 특집을 읽으면서다. 처음에는 충격을, 나아가 참회를, 끝내는 감사보은 한마음을 안겨준 부분을 내 방식대로 간추리면 이렇다.
거리 1167km, 기간 43일, 주로 야영 가끔 투숙, 조심조심 찻길갓길 살펴걷기… 칠순 넘은 스님에게, 게다가 음식 이전에 물만 바뀌어도 탈나기 쉬운 장염을 앓는 스님에게, 위험한 모험일 수밖에. 만류가 거셌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그런다니 가야겠다! 어차피 죽을 몸 부처님 길 위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말로 그쳤어도 “그 연세에…그 건강에…” 할텐데 만일에 대비해 통장까지 누군가에 맡기고 떠났다는 대목에서, 건강을 핑계로 가까운 절 출입도 삼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동안 멍했다. 문득 합장을 했다. 뵌 적도 안 적도 없는 스님을 향해서, 그리고 스님의 결단이 있게 해준 모든 인연들, 즉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부터 시작해 2600년 뒤 상월결사 성지순례를 기획 준비 진행 지원 취재 성원한 모든 도반들을 향해서도,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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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