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생각 - 천개의 찬란한 태양

2023-03-06 (월) 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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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침략으로 아프가니스탄이 공산화되자, 1980년 미국망명길에 올라 내과의사가 된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 1965~). 그가 2007년 출간한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다. 처음 접한 아프간의 소설로, 백지상태였던 그 나라의 실상이 ‘심봉사’ 개안되듯 그림이 확 그려졌다. 아프간의 역사, 자연, 음식, 이슬람의 풍습 등에... 문학의 힘, 곧 문화의 힘이 이토록 강하다.

이 소설은 러시아 침공이전의 비교적 평온했던 시기부터, 소련과의 전쟁과 권력다툼과 정쟁(政爭)의 회오리 속에 희생양이 된 시민들의 비극과 죽음이 배경이다. 특히 철저한 남성본위의 율법과 엄혹한 남존여비의 인습에 핍박받는 여성들의 아픔이 호소력 짙게 생생히 전달된다. 여성들이 받는 불공평한 처우에 공분(公憤)이 나서 읽어내기 힘들 정도로. 내가 개방된 한국에서 태어난 게 무한 다행으로 여겨졌다.

스토리는 사생아로 태어난 마리암이 15살에 주위의 강압에 의해 상처한 40대의 남자랑 결혼하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의 산 표본의 남자인 걸 모른 채. 마리암이 거듭 유산을 하자, 남편은 사악한 폭언과 상상불허의 폭력주의자로 돌변, 본색을 드러낸다.


얼추 60세가 된 남편은 로켓탄유탄에 온 가족이 횡사한 이웃의 14세 소녀인 라일라에게 접근한다. 그녀에겐 어릴 때부터 친구인 지뢰로 다리하나를 잃은 사랑하는 남자가 파키스탄으로 피난 간 상태였다. 남편은 음흉한 술책으로 그 남자가 죽은 것처럼 조작, 라일라를 첩으로 취한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딸을 보며 자기 핏줄이 아닌 걸 눈치 채곤, 무자비한 구타로 라일라의 한쪽 귀까지 멀게 한다.

또 마리암과 라일라에게 상습적으로 가죽벨트의 버클 쪽으로 얼굴과 몸을 내리쳐 온 몸을 피투성이로 만든다. 시한폭탄 남편의 폭행에 고양이 앞의 쥐로 살던 두 여자는, 서로 의지하며 친 모녀지간처럼 돈후(敦厚)하게 지낸다.

남편은 극악해져 질식할 듯 더운 날임에도 마리암을 창고에 가둔다. 라일라와 애기는 창문에 판자를 박은 다음, 문의 열쇠구멍까지 막아 빛을 차단시키곤 찜통 같은 방에 감금한다. 사흘 동안 물조차 안준다. 두 여자는 공포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라일라가 아들을 낳자 남편은 미워하던 딸을 고아원으로 내쫓는다. 그때 파키스탄에서 죽었다던 딸애의 친부가 찾아왔다. 그걸 안 남편이 매질 끝에 라일라의 목을 졸라 거의 죽게 되자, 마리암은 남편의 살인의도를 간파, 부삽으로 내리쳐 응징한다.

27년간 인격적인 무시, 모욕적인 굴종의 비참한 삶에서 자기 의사대로 처음 인생행로를 결정,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태어나 최초로 사랑받고 또 사랑을 줌으로써 행복했던 기억을 준 라일라와 애들! 그들을 자기 힘으로 지켜낸 다음, 우겨서 피신시킨다. 그리곤 정당방위였지만 여자이기에 경기장에서 공개총살형을 당하면서도, 한 점의 후회와 미련 없이 당당히 죽음을 맞는다.

그녀 덕에 파키스탄에서 온 가족이 새 생활을 찾은 라일라. 마리암이야말로, 가슴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간직한 품위 있고 따스하며 용감한 여인으로 회상하며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마리암을 기리며 고국에 돌아와 고아원에서 몰래 여자어린이들에게 교육봉사를 한다.

읽는 내내 절감하는 게, 누구에게나 단 하나의 목숨이고 단 한 번인 삶이라는 것. 그 누구든 죄 없는 사람의 생명을 뺏고 삶을 망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한다는 거다. 그리고 부디 아프간여성들이 소신에 의해 부르카를 벗고, 교육의 자유와 인간적인 해방아래 진정한 자아성취를 이루며 살기를...

<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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