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곳에서는 오늘이 한국 전통식으로 음력 정월 열이틀, 사흘 뒤에 대보름을 맞으며 계묘년 설 기림을 맺게 되는 줄 압니다. 모레는 ‘입춘’으로서 봄 문턱을 넘어서는 절기인데, 재래식 농경문화 풍습에서는 ‘입동’ 이후 겨울동안 쉬며 놀았던 시절을 접고, 이제부터 새해 새봄을 맞으며 농사일을 시작하는 계기를 갖는 줄 압니다. ‘농사’란 그 터전인 땅을 갈고 씨 뿌려 가꾸어서 열매를 얻는 일이니, 다른 분야에서도 각각 기획하고 작업하여 성취하는 틀의 근본이 되며, 인과의 법칙을 보여줍니다.
독자분들도 각자의 상황에서, 일년뿐만 아니라 일생의 계획과 과정을 살펴서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즈음 전통선원에서도 석달 동안거(음력 시월보름부터 정월보름) 정진 결제를 해제하고 각종 만행을 시작하는 때로 삼습니다. 이는 수행자들이 대부분 산중 선원에서 움직임을 삼가하고 조용히 참선하던 생활 체제에서 나와, 기후와 자연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마을이나 도시로 들어가서 대중에게 수행공덕을 회향하며 자비행을 실천해 보는 관습에서 비롯됩니다. 이달 말경에는 석존의 출가절(음 이월초파일)도 있습니다. 그날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며, 기리고자 합니다.
‘출가절’이란 수행을 위하여 ‘집을 떠난 날’을 말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618년전 인도 카필라국 슈도다나왕궁에서 싯다르타 왕자가 음력 2월 초여드레 밤중에 성벽을 넘어 본격적 수행 길에 들어선 상황을 가리킵니다. 이는 싯다르타의 나이 29세 때이며, 야소다라왕녀와 결혼하고 10년 뒤, 아들 라훌라를 낳은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고 전해집니다.
그전에 이른바 “사문유관” 즉, 왕궁의 네 문을 돌아보게 되는데, 소풍을 나가려 동문으로 가니 추한 늙은이가 보였고, 이어서 남문으로 가니 병자가 신음하는 모습, 서문에서는 죽은이의 장례행렬, 북문에서는 출가사문 수행자를 만나보게 되었는데, 수행자로부터 ‘생로병사’를 해탈하련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도 그 길을 가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전하지요. 지금은 젊고 건강하지만 마침내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느끼고는, 왕궁의 부귀영화와 환락도 생로병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가족을 포함한 누구도 그 운명을 대신할 수 없음을 직관하였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이는 싯다르타뿐만 아니라, 건전한 이성과 감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불편한 진실이지요만, 그분처럼 실제로 출가를 감행하기는 뜻대로 쉽지 않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줄 압니다. 그래서 그분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Great Renunciation)'라고도 하며 찬양해마지 않습니다.
싯다르타가 출가를 하고는, 당시의 저명한 스승들을 참방하여 그들의 최고경지에 이르렀지만 만족하지 못하여, 최후에는 독자적 수행의 결과로 마침내 생사해탈의 붓다가 되셨고, 그 방법을 뭇 생명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여생을 다 보내셨음을 우리는 압니다.
대승불교도들은 붓다의 열반절(음 이월보름), 성도절(음 납월파일), 탄생절(음 사월파일)과 함께 출가절을 4대명절로 기려오고 있습니다. 요즈음 승단의 일부 사이비 저질 출가자들의 범계의혹사태가 언론에 보도되어 공분을 일으키고 있기도 한데, 대중의 신망을 잃은 저들은 마땅히 물러가 참회하고 속죄하리라 봅니다. 본래 출가에는 보이는 몸의 출가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출가를 더 중히 여깁니다. 세속적 유혹과 욕망을 이기고 붓다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의지를 가진 진정한 출가수행자는 존중 보호되어야 마땅한 줄 압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출가의 문을 통해, 싯다르타처럼 생사해탈의 대자유와 영원한 행복 직접 누려보시기를 권하며, 여의치 않다면 세속에서라도 이른바 “진흙 속의 연꽃”처럼 피어나는 격조 있는 생활로 나름 마음의 청안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마하반야바라밀!
<
진월 스님/리버모어 고성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