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칼럼] “행복한 왕자”
2022-12-01 (목)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아래는 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내용이다.가난한 도시에 한 왕자 동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값비싼 보석들이 박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느날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동상의 발에 계속 머물렀다. 왕자와 제비,이 둘은 곧 친해졌다. 왕자는 제비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의 몸에 박힌 보석들을 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것을..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흐른 후 모든 보석이 다빠진 볼품없는 왕자와 그 동상 밑에서 얼어죽은 제비..처음 이 글을 읽고 안개에머리가락이 젖듯이 가슴에 감동이 촉촉히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상세히 이 글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왕자는 언덕 위에 서서 소외당하고 가난한 사람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결심을 한다. ‘자신의 몸에 박힌 보석을 그들에게 빼어 주겠다’고..그때 동상에 날아온 제비는 이런 왕자에게 감명을 받고 그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동상을 대신해 보석을 실어 나른다. 그러다가 철이 바뀌어 따스한 나라로 떠나야 하는데 왕자의 부탁을 끝까지 들어주곤 동상 밑에서 그만 얼어 죽고 만다. 그 순간 왕자의 몸에서도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납으로 된 왕자의 심장이었다. 사람들은 흉물이 되어버린 왕자의 동상을 무너뜨리기로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깨진 왕자의 심장과 죽은 제비를 하늘나라로 가져오도록 했다. 이 글의 엔딩은 참 슬프면서도 감동스럽다. 이내 마음이 숙연해지고 따뜻해 진다. 그래서 제목이 행복한 왕자인가 보다. 누구던지 이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 뭉쿨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인생은 과도히 쌓고 얻는다고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부의 크기로 행복을 측정한다면 재벌그룹 총수들은 모두 행복해야 할 것이고 소득지수가 높은 나라는 행복한 나라이어야 할 것이다. 교회도 교세가 크고 자원이 많고 프로그램이 왕성한 교회가 행복한 교회일 것이다. 헌데 실제 행복지수는 부의 지수와 반드시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재물은 행복과 평안한 삶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절대 충분조건 아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이스털린이라는 학자가 주장한 것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행복수준도 올라가지만, 일정 소득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로는 행복수준이 정체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학설이다.
인생과 삶의 행복은 쌓아둠에만 있지 않다. 주고 나누어 줌에도 있다. 쌓고 모음의 목적중 하나는 여건이 안되어 혹 그럴 능력이 없어 늘 가난하고 연약하게 살수 밖에 없는 자들을 돕고 섬기는 것이다. 성경은 섬기는 삶을 철저히 강조한다. 예수님은 하늘보좌 영광을 내려 놓으시고 종으로서 세상에 오셨다. 주님은 섬기시는 종이셨다. 주님은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셨다. 마지막에는 당신 몸과 피까지 주셨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면서 하나님께 찬미하고 행복해 하셨다.
오늘날 세상살이가 무척 황량해져 간다. 거의 3년이 되어가는 코로나 전염병, 치솟는 물가고, 9 개월을 훌쩍 넘기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테러및 총기사건, 가뭄, 홍수,자연재해등으로 처처에 불안과 소요스러움이 증폭되어 가고 있다. 어딜봐도 행복의 실체가 잘 안보인다. 기독자들은 이런 소요스러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인생과 역사의 어려움을 종식시켜 줄 분은 주님 밖에 없으시다. 또한 우리들은 성경이 교훈해준 대로, 또한 본 글의 왕자 동상이 일깨워주는 대로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들을 섬기는데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행복은 감동적이고 울림있는 가르침을 수용하고 실천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참 지식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대로 실천하고 행동할때 형성된다.
'행복한 왕자'이야기는 참된 행복은 이웃을 위해 진심으로 흘리는 눈물과 그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섬김에 비례함을 알려준다. 자신을 내어 주는 만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발꿈치를 한껏 높이 쳐들고 겸허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보다 더 힘겨운 사람에게 믿음과 사랑으로 한끼의 밥이라도 나눈다면 그는 정녕 행복한 사람이고 주님이 바라시는 기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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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