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無盡燈)] 성숙의 계절
2022-11-24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가을이 깊었다. 단풍으로 가득했던 영화사 뜰도, 낙엽과 함께 조금씩 헐렁해지고 있다. 그래도 감나무엔 아직 감이 남아 있어,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새들이 와서 쪼아대서 여기저기 상처는 났어도, 주황색 선명한 빛깔은 참으로 아름답다. 잘 익은 과일들을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과일은 감동이다. 오랜 인고의 풍파를 이겨내고 익어서, 온몸을 남에게 다 내어주는 것이다. 성숙이란 이런 것이다, 배우게 된다. 요즘은 성숙한 어른을 보기 어려운 시대인 것같다. 늙었음에도 모두 젊어 보이려 하고, 안 늙었다고 한다. 마치 청소년처럼 성숙치 못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도 많다. 그리고 그런 행이 마치 옳은 양, 부추기는 추세도 있다. 젊게 사는 거 좋다. 마음은 늙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청년일 수 있다. 하지만 몸은 아니다. 몸은 이미 낡았다. 이 중이 평소 좀 듣기 불편해 하는 말이 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아직 몸도 마음도 청춘이다, 라는 말이다. 나이 먹었으면 몸도 마음도 청춘이면 안된다. 청춘, 아니고 만추,이기 때문이다. 비록 마음은 청춘일지라도, 행은 나이에 맡게 맞춰줘야 한다. 예전 어른들은 그랬다. 너희들이나 해라. 우린 괜찮다. 너희가 기쁘면 된다. 늘 그런 식이셨다. 그들 마음이라고 청춘 아니었겠는가. 성숙된 마음으로, 양보하고 물러나주신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존경을 받았다. 옛날 얘기다 할까봐, 최근의 예를 들어본다. 얼마전 유명한 모델 신디 크로포드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우아하게 늙는 법에 대하여 얘기했다. 신디 크로포드는 우리 세대에겐 30년 전, 1992년, 그 전설의 콜라 광고에 멈춰있다. 하지만 모델 신디 크로포드는 그 자리에 멈춰있지 않다. 3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몸에 담고, 노년의 현재를 살고 있다. 그 신디 크로포드를 검색창에 치면, 사람들이 댓글로 제일 많이 말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아름답다, 위드아웃 플라스틱 써저리 오아 보톡스,' 라고 얘기한다. 다행히도 아직은 많은 이가 자연스럽게 늙는 것에 대해 옳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는 말한다. "나는 25살이 아닌데 왜 25살처럼 보여야 하나, 나는 다른 단계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나는 내가 25살과 30살 때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56살이 아니다. 나는 진화했고, 사업들도 발전했다. 그것이 내가 직업상 그렇게 오래 살고, 사람들이 나를 따라오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늙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나이를 먹는 것은 충분히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젊음에 사로잡힌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신경쓰지 마라." 이것이 성숙된 어른이다. 그는 아직 환갑 전이다. 그래도 얼마나 성숙된 사람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나이 먹는 것의 어려움과 그 나이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노인이 늙음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누가 그 가치를 알아주겠는가. 오래 살았다는 것은 결코,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그 세월 곳곳에 삶의 성과가 담겨있다. 성과는 성숙됨에 그 가치가 있다. 완전히 성숙되었다는 것은, 기꺼이 후대에 내어주고, 썩어서 토양이 되고, 바탕이 되어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어른이 많을 때, 오래 산 세월이 가치있어 진다. 지금 세상엔 어른의 자리는 없어졌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인을 보면 노친네다, 뭐다 하면서, 무시한다. 젊은이들 탓할 일이 아니다. 푹 익은 세월의 가치를 보여주는, 성숙한 어른들이 많았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나이 먹고도 땡감처럼 떫다면 누가 그 가치를 쳐줄 것인가. 세상 모든 과일이 가치있을 때는, 잘 익었을 때이다. 나이 든 이들은 그런다. 젊을 때 못한 거 이제 해보고 싶다고. 해도 된다. 하지만 젊음 만은 안된다. 절대로 가을은 봄을 표현 할 수 없다. 자연 질서상, 표현하려 해서도 안 된다. 자연의 질서가 바로 서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표현했다 해도,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을 지언정, 진짜는 아니다. 진짜 근사한 노년을 원한다면, 봄보다 아름다운 가을 겨울의 몫을, 성숙과 비워냄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두가 사랑하는, 저 만추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말이다. 성숙의 계절 없이, 어찌 따스한 봄을 기대할 것인가.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