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의견 - 안전불감증

2022-11-03 (목) 이상민/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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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하자마자 전직원과 함께 묵념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했다. 주말 동안에 들은 이태원 참사 소식에 마음이 아팠고 충격이 커서 이렇게라도 애도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이번 사고로 인해 주말내내 세월호 참사 (2014년), 마우나오션 리조트 대학생 참변 (2014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1999년) 등등 그간 있었던 비참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자칭 선진국임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도대체 이런 일들이 왜 반복되는지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은 모두 안타깝게도 아동 아니면 학생, 그리고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안전수칙을 제대로 따랐다면 피할 수 있는 참변들이었다.


돈을 벌 욕심에 화물을 더 싣겠다고 배의 평형수를 뺐고, 오리엔테이션을 저렴하게 하려고 눈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는 체육관에 신입생을 모아놨고, 깡통 같은 컨테이너로 좁은 공간에 어린이집을 만들어 불이 나도 소방차가 접근할 수가 없었다.

젊은이들의 안전에는 모두 무감각했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 국민은 안전불감증이라는 DNA이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안전불감증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어느 날 한국에서 온 손님과 국내여행을 하려는데 심한 안개 때문에 항공편이 연발된다는 안내가 나왔다. 여행객 모두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서 온 손님은 안달이 났다.

‘아니 이 정도 날씨에 비행기가 못 뜬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한국에선 이것보다 더 심한 안개 속에도 다 뜨는데.’라며 투덜댔다. 내 목숨이 달린 순간 아닌가? 어떻게 저런 불평을 할 수 있을까 의아했다. 또 한 번은 1985년 9월 말 Gloria 라는 허리케인이 뉴욕지역을 강타했을 때다.

당시 미국회계법인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전직원 조퇴하라는 조치가 내려졌는데 유독 한국부 보스만이 근무시간에 어딜 가냐며 조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큰 회사에 한인 직원들만 남아 흔들리는 고층건물에서 허리케인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근무를 했다. 지금 생각하니 끔찍한 순간들이었다.

안전불감증은 언젠가는 사고를 불러오게 돼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결국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사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사고 후에 꼭 다음과 같은 주장이 등장한다. ‘도대체 누구 때문이냐?, 아무개 책임지고 사퇴하라., 누구는 당장 퇴진하라.’ 등등. 이건 선진국에서 하는 처사가 절대 아니다. 조선시대에나 나올 듯한 매우 무책임한 처리법이다.

벌써 이런 무책임한 말이 나돌고 있어 우울함을 더한다. 지금 우리는 남을 원망하고 책임을 물을 때가 아니다. 우리 뼛속까지 자리잡은 안전불감증 DNA를 깨끗히 발라내는 수술을 해야 할 때다. 안개를 뚫고 비행기를 띄우는 건 용감한 게 아니고 허리케인과 맞짱 뜨며 일하는 건 무모한 짓이란 교육을 할 때인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나라 국민이 안전에 대해 계몽되길 바라며 묵념했다. 오늘 아침 다시는 국격이 떨어지는 참사로 젊은 생명을 잃는 일이 대한민국에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랬다. 오늘 아침 묵념을 하며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이상민/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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