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팟캐스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다혜님이 나왔다. 이다혜님은 한국에서 20여년간 영화 및 문화 전문지를 출판하는 여러 잡지사에 근무하며 글을 써온 기자이자 여성 직장인으로서 본인이 해온 경험을 ‘출근길의 주문’이라는 책에 녹여낸 작가이다. 매일 같은 곳으로 정시에 출근을 하고 똑같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을 하는 회사인은 아니지만, 나 역시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여성이기에 출근길의 주문은 젊은 여성으로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노동들을 껴안고 가는 일인가, 또 어떻게 일터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던 책이었다. 그녀는 ‘퇴근길의 마음’이라는 새 책을 냈고, 팟캐스트에 초대를 받아 나온 것이었다.
팟캐스트에서 그녀는 어떻게 지치지 않고 일하는가, 적성에 맞는 일이란 무엇인가, 네트워킹은 어떻게 하는가 등등의 인터뷰이의 질문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단연, 나와 일을 분리하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는 일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일에 대한 피드백도 자신에 대한 평가로 이어 받아 공격으로 받아 들이거나, 일을 잘 해내면 그것이 최고의 성과인 것 마냥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일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사람들은 괴로워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경험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일은 망해도 나는 망하지 않아야죠” 라고 하며 나는 일이 아니며, 나는 일 이외에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분야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는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 나는 일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일 이외에 어떤 것들이 내 생활을 지탱해주는가? 사랑하는 나의 파트너와 우리 가족의 다른 구성원인 강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빼면, 부끄러울 만큼이나 남은 것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마지막 버팀목이라고 겨우 겨우 해 내고 있던 아침 운동도 바쁘다는 핑계로 게을리 하고 있었고, 나름 자랑스러워 했던 집에서 요리하기도 매너리즘에 빠져 똑같이 간단하고 빨리 끝낼 수 있는 비슷한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것들을 저녁으로 먹었다. 주말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파트너가 포장해오는 음식을 같이 먹는 일, 가까운 공원으로 강아지를 산책 시키는 일 외에는 극히 드물었다. 친구의 생일이 있었지만 미리 준비하지 못해 급히 약간의 돈을 부치는 것과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삶이 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다.
생각해보면 그 전에도 나는 그랬다. 일이 먼저였고, 나도 내 주위도 잘 보살피지 못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시기’라고 굳게 믿고, 언젠가 더 상황이 나아지면-번듯한 직장을 구하면, 지금보다 돈을 더 잘 벌게 되면, 대학원만 졸업하면, 등등 과 같은 여러가지 가정과 조건들을 앞에 내 걸고 그것들 때문에 ‘지금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원도 졸업했고, 직장을 구했고, 매달 월급이 나오는 지금 나의 삶은 예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시간내에 홍수처럼 나오는 정보를 걸러내서 끊임없이 읽어 내고, 가르치고, 글을 쓰는 직업의 성격상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일이 먼저인, 그래서 나의 삶은 뒷전인 생활을 계속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는 ‘3년차 인사평가가 있잖아. 그러니까 더 그랬던 거지.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과, ‘아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마음이 팽팽하게 맞서 싸우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고 일을 하며 살아갈까?
그래서 나는 언제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갈까? 라고 질문하기 보다는 오늘 하루를 다시 나를 중심에 놓고 살아보려고 한다. 일어나 책상으로 바로 가서 앉기 보다는 나가서 열심히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어 내가 좋아하는 요거트와 그래뇰라, 사과를 담아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잠시 놓고 있었던 아침 일기와 명상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 내었는지, 잘 했는지, 잘 못했는지 보다는 지금 내가 괜찮은 지, 너무 빨리 달리고 있는지, 휴식이 더 필요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멈추고 물어보기로 한다. 나는 잘 하고 있고 내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얘기 해 주기로 한다. 이 질문들과 주문으로 나의 퇴근길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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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