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언더도그마의 함정

2022-06-08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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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도그마(underdogma)는 약자를 지칭하는 언더독(underdog)과 절대적인 신념을 의미하는 도그마(dogma)를 합친 사회과학 용어이다. 약자를 절대적으로 응원하다 보니 선악을 판단하는 것조차 비합리적으로 흐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현상을 말한다.

돈 많고 강하다고 해서 다 나쁜 자이고 불쌍하고 약하다고 해서 다 착한 자라는 오류를 범하게 만드는 언더도그마 현상. 약자를 뜻하는 ‘언더독’과 신념을 뜻하는 ‘도그마’는 어쩌면 인간만이 조합시킬 수 있는 합성어인지도 모른다. 과연 정글같은 요즘 사회에서 이런 법칙이 통할 수 있을까.

TV에서 게임을 볼 때 한 쪽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면, 관중들은 지고 있는 상대방의 편을 들어주면서 심리적인 균형을 맞춘다. 그래야 더 재미있는 경기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질 것 같은 팀이나 전쟁을 겪고 있는 약소국을 도덕적으로 옳고, 도와야 하는 선으로 간주하고 상대하는 강팀이나 나라들을 불공평한 악으로 폄훼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언더도그마 현상이다.

한 예로, 강국인 러시아에게 침공당한 우크라이나에게 전세계가 동정표를 보내는 것도 언더도그마의 일종일 것이다. 나아가 수백년간 노예생활의 고초를 겪은 조상을 둔 흑인들을 동정하는 BLM(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지지자들 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그러면 과연 약자는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강자는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할까.

몇주전 뉴욕의 지하철에서 골드만삭스의 투자 리서치 담당 직원이 총격 살해됐다. 사건 후 키찬트 시웰 뉴욕시 경찰청장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용의자 색출에 협조를 호소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계에서 가장 큰 손이자 최강자인 조직이다. 그 조직의 일원이 지하철에서 저소득 흑인에 의해 무차별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여기서 누가 언더독이고 누가 강자일까.

뉴욕경찰은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뉴욕시에서 모두 194건의 증오범죄가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늘어났다고 밝혔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3배 이상 폭증했고 아시안 혐오범죄는 보고되지 않아 그렇지 그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뉴욕시 혐오범죄의 양상은 폭행사건이 주류였다. 맨하탄의 한 건물 앞에서 흑인 남성이 65세 아시안 여성을 이유 없이 폭행, 여성이 바닥으로 쓰러졌고 가해자는 쓰러진 여성의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리쳤다. 피해 여성이 움직이지 않자 가해자는 주변을 살핀 뒤 아무 거리낌 없이 자리를 떠났다. 여기서 누가 언더독이고 누가 강자인가?

동양인들은 이민 와서 열심히 일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졌으나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죽여도 괜찮은 대상인 것일까. 흑인들은 사회제도적으로 강탈당하고 압제당한 역사가 있으니 언더독 특권을 누리면서 아무나 때리고 죽여도 불쌍하고 가엾게 느껴야만 할 대상인가?


흑인 생명이 소중하다면서 전국을 BLM 광란으로 휩싸이게 만들고 나니 불쌍한 흑인들이 하는 행동은 일단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주어야 한다는 정서가 미국을 뒤덮었다.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이제 흑인들이 저지르는 대다수 증오범죄에 대해 흑인시장은 말 뿐이고, 아무도 입바른 소리만 할 뿐, 흑인 언더도그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실정이다.

경제적인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된 자본주의사회의 강자보다 도덕적인 우위에 있다고 믿는 언더도그마. 이것이 미국사회의 무질서를 더욱 더 대책없는 카오스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언더도그마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시되고, 법치와 정당한 부가 유명무실해진다는 사실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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