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여자의 삶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의 운명 이야기”

2022-05-27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크게 작게

▶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클론다이크’에서 이르카로 나온 옥사나 체르카쉬나

“한 여자의 삶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의 운명 이야기”

‘클론다이크’에서 이르카로 나온 옥사나 체르카쉬나

현재 러시아가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와의 접경지역인 돈바스는 지난 2014년에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친 러시아 분리주의자들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우크라이나 영화 ‘클론다이크’(Klondike)는 이 전쟁에서 친 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의 박격포 오발로 집 한쪽이 파괴된 농부의 만삭인 아내 이르카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전투의 와중에서도 집을 지키려는 그의 고집을 뛰어난 연기와 함께 병적인 유머를 섞어 서술한 훌륭한 드라마다. 영화의 시간대는 2014년 7월로 이 달 17일에는 돈바스 상공을 비행 중이던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격추돼 298명이 사망했다.
“한 여자의 삶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의 운명 이야기”

‘‘클론다이크’’의 한 장면


영화에는 이르카의 집 근처에 떨어진 이 여객기의 잔해가 보인다.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클론다이크’는 올 선댄스 영화제서 여류 마리나 에르 고르바흐가 세계극영화 감독상을 탔고 베를린 영화제서는 파노라마 관객상 2등상을 받았다. 이르카로 나온 옥사나 체르카쉬나(34)를 영상 인터뷰했다. 폴랜드의 바르샤바에서 인터뷰에 응한 체르카쉬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직선적이요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마리나가 처음에 당신에게 어떻게 이르카 역을 제의 했는가.

“마리나는 처음부터 나를 배우로서가 아니라 동반자로 취급했다. 감독의 상상을 화면 위에 묘사하는 배우가 아니라 영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으로 대우했다. 그로 인해 나는 영감을 받아 그와 함께 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르카 역을 해내는 것은 도전적인 일이었다. 마리나와 나는 영화를 단순히 한 여자의 얘기가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의 운명의 얘기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돈바스에 살았던 우크라이나 여인의 얘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마리나는 평소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어떤 한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자고 말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하고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하겠다.”


-선댄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서 각기 상을 탔을 때 어디에 있었으며 소감은 어땠는지.

“선댄스 영화제서 상을 탔을 때 나와 제작진은 모두 키이우에 있었다. 우린 함께 축배를 들었다. 베를린 영화제 때는 나와 일부 제작진이 베를린에 있어 거기서 함께 수상을 축하했다. 베를린 영화제의 수상은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침공하기 직전으로 그 상은 단순한 상의 범주를 넘어 국제적 관객들이 우리가 말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얘기를 듣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우리 얘기를 들어준 독일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현 정치적 상황 하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예술과 정치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뿐 아니라 연극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그 것이 무대이건 스크린이건 간에 내가 그 매체를 통해 하는 말을 정치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정치적 운동의 한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단순히 목격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극히 최소한의 것일 뿐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침공하기 시작했을 때 우크라이나의 많은 영화인들은 작품을 촬영 중이거나 또는 제작 후반 작업 중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영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세계와 연결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러시아의 침공 전에 완성해 세상에 선을 보여 성공한 ‘클론다이크’는 큰 특권을 누린 것이나 마찬 가지다.”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는지.

“난 어렸을 때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열망했다. 무대에서 연주해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 그러나 열 살 때 나는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려면 천재이어야 한다. 그러자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변화했다. 그래서 무대에서의 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관객이 보는 가운데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이나 청중이 보는 가운데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은 아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나는 영화보다 연극에 훨씬 더 많이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 영화인들이 나를 자기들 작품에 초청해 영화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데 연기란 음악과 아주 비슷하다. 연기란 리듬이 가득한 것으로 그 것은 리듬을 변화시키는 것이자 리듬과 함께 유희하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갔다 온 줄 아는데 가본 느낌이 어떤지.


“그 것이 무엇이라고 밝히진 않겠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의 모든 국민들이 하고 있는 봉사활동을 하려고 갔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려고도 갔다. 나와 다른 봉사자들이 함께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 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전사자를 위한 장례행렬을 만났다. 그래서 우리도 이 행렬에 참가했다. 맑은 하늘에 미사일도 날아오지 않았지만 그 죽음을 보자니 고통스러웠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이 죽음이란 것이 현존하고 있다.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은 사람들의 이름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죽은 사람들은 세상에 이름대신 숫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되기를 중단 한 것이다. 그 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나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불려 지기를 희망한다.”

-한 인터뷰에서 더 이상 정치인들과 유럽공동체 및 유엔 같은 조직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 것은 나의 절망감을 표현한 것으로 지금도 난 그렇게 느끼고 있다. 누구를 탓하고 싶진 않지만 우크라이나 영공을 폐쇄해달라고 간청을 해도 세계는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난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겠으며 또 믿지도 않는다. 오늘도 내 고향 카르키브에서는 다섯 명이 사망했고 마리우폴은 러시아의 폭격으로 쑥대밭이 됐다. 난 한 인간으로서 이에 대한 인간성을 기대했지만 그런 반응을 받지 못했다. 집단사회란 그 사회 안의 그 누군가가 곤경에 처하거나 이유 없이 살해당하거나 또 어린 아이들이 강간을 당하면 그에 대한 어떤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바르샤바나 베를린 등 그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그 누군가 한계를 넘어 폭력적이 될 때 이를 막지 않으면 그 폭력은 확대되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이는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 대단히 무섭다.”

-마리나와 또 함께 일 할 예정인지.

“우리는 이 작품을 만들 때 동반자로서 일했다고 말했듯이 마리나와는 직업상으로서만 이 아니라 인간적으로서도 교신하고 있다. 마리나는 지금 터키에 있다. 나와 마리나는 함께 세계 영화제를 돌면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마리나는 지금 새 영화를 준비 중인데 아직 그에 대해 우리는 서로 얘기를 주고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품에 내가 할 역이 있다면 난 기꺼이 마리나와 함께 일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일해본 적이 있는가. 그는 어떤 배우였는가.

“불행하게도 그와 함께 일해본 적은 없지만 그는 직업적인 배우이자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지금 튼튼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데 배우로서의 재능이 그를 훌륭한 정치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대나 스크린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큰일을 겪은 후에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는데 젤렌스키에게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재능 있는 배우가 된 것이 그가 지금 생존할 수 있도록 크게 도와주고 있다고 본다.”

-나라를 위해 정치 활동을 할 생각이라도 있는지.

“그런 것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무대에서건 스크린에서건 연기한다는 것은 정치적 활동이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