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칸사 일기-II

2022-03-28 (월)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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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쳐(Vulture) 떼가 원을 그리며 목장 상공을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밑을 바라보니 낳은 지 얼마 안되는 송아지 한마리가 풀밭에 쓰러져있고 그 곁을 어미소가 지키고 서 있었다. 벌쳐들은 어린 송아지가 죽기를 기다리며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들은 예외없이 무리지어 이동을 하는데 어미소는 제 새끼가 쓰러지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새끼를 돌보고 있었다. 쓰러져있는 송아지에게 다가가 보니 네 다리를 바르르 떨며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어린 것이 며칠 전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탈이 난 것 같았다. 송아지를 트랙터에 태워 축사 안으로 옮기고 건초더미 위에 눕힌 후 모포를 덮어주었다. 축사 안으로 따라 들어온 어미소는 걱정스러운 듯 새끼를 바라보며 음매 음매 낮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미소의 젖은 잔뜩 불어있었으나 송아지가 일어서질 못하니 새끼에게 젖을 물릴 수가 없었다.


1갤론들이 커다란 우유병에 분유를 타서 송아지 입에 젖꼭지를 물렸다. 송아지는 어미소 젖처럼 생긴 커다란 고무젖꼭지를 물더니 몇모금 빨다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어미소는 송아지 곁에 서서 새끼 몸에 눌러 붙은 진흙을 연신 혀로 핥아내어 씻겨주고 있었다. 젖을 물릴 수 없으니 어미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새끼를 핥아주는 일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 가 보니 송아지는 그대로 건초 더미위에 모포를 덮고 누워있었고 어미 소도 그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우유병 젖꼭지를 물리니 송아지는 전날 보다는 오래 젖을 빨았다. 첫날은 갤런들이 우유병의 반의 반도 먹지 못했으나 둘쨋날 아침에는 거의 반병을 비웠다. 세 번째 수유에서는 한병을 다 마셨고 다음 날 아침에는 벌컥 벌컥 들이키듯 순식간에 우유병을 비웠다. 4일째 되는 날 축사에 가보니 누워있던 송아지가 일어서서 어미소의 젖을 빨고 있었다. 송아지에게 봄기운 처럼 싱싱한 생명력을 받아 빨리 건강해지라는 뜻으로 ‘새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닭들은 오늘도 서른 개가 넘는 알을 낳았다. 농장 집 앞 텃밭에는 아스파라거스, 상추, 무우, 양파 등 야채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목장 건너편 과수원에는 블루베리, 블랙베리, 사과 등 과수나무에 물이 오르고 있다. 자주 잡초를 뽑아주고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한다.

같이 사는 개 세 마리는 소나 말이 지나갈 때마다 컹컹 거리며 짖는다. 개도 사람과 똑같이 잠 잘 때 코를 고는가 하면 잠꼬대를 하기도 하고 하품도 한다. 물론 방귀도 꾼다. 재미있는 것은 개들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개 세 마리가 요란하게 짖고 뛰고 나대다가도 내가 노래를 불러주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특히 백년설이 부른 나그네 설움을 좋아하는지 그 노래를 불러주면 날뛰던 개들이 온순하게 앉아서 노래를 듣다가 곧 코를 골며 잠에 떨어진다.

동물들이 사람과 다른 점은 거짓말도 할 줄 모르고 푸틴처럼 이유 없이 남을 해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동물보다 크게 나은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닭처럼 알을 낳아주기를 하나 소처럼 우유와 고기를 주기를 하나 개처럼 충실하게 주인을 섬기기를 하나…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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