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은둔과 침묵’

2022-03-14 (월) 김창만/목사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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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가 홀로 조용한 방에 머물 수 없다는 단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은 내 영혼 속에 전율을 불러일으킨다.“(파스칼의 ‘팡세’ 중에서)

은둔과 침묵의 의미는 같은 맥락이다. 침묵하려면 혼자 조용히 은둔할 줄 알아야 하고, 조용한 은둔이 있는 곳에 침묵은 열매를 맺는다. 침묵과 은둔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언행은 경박스럽다. 정체성의 중심을 잃는다. 은둔과 침묵 속에서 오래 다듬어지고 정화될 때 거기서 진실한 힘이 나오고 그 위에 경건한 휘광이 에워싼다.

은둔과 침묵은 세상의 소란을 잠재운다.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걷어낸다. 파스칼이 ‘홀로 조용한 방에 앉아 은둔하며 침묵하는 법’을 배웠을 때, 허무와 위선으로 가득 찬 자신을 무너트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 후 ’팡세‘의 재료가 되는 ’메모리알(Memorial)을 썼다.


은둔과 침묵이 결여된 삶은 위험하다. 인간이 길을 잃는 것은 노동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멈출 줄 모르는 과속의 삶 때문에 인간은 길을 잃는다. 은둔과 침묵을 무시한 사회가 인간을 사색(思索)없는 무생물처럼 만들어 놓았다.

선지자 엘리야는 우리에게 은둔과 침묵이 부족할 때 위기를 돌파하는 길을 잃어버린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엘리야는 강박한 아합 왕과의 영적 대립으로 극심하게 지쳤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엘리야는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임을 깨달았다.

각성된 엘리야는 한적한 로뎀 나무 아래로 피정(避靜)했다. 며칠 후엘리야는 호렙산 기슭의 굴로 거처를 옮겼다. 엘리야는 거기서 오래 침묵하고 운둔했다. 침묵과 은둔의 날이 깊어가자 엘리야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다. 엘리야는 영적으로 도약했고 참 자유인이 되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아무르와 우수리 강을 낀 시호테알린 산맥에서 혼자 산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사회성이 약한 반면에 독립심, 책임감, 예지력은 다른 동물보다 몇 배 강하다. 이것 때문에 시베리아 호랑이는 자신의 기척을 은밀하게 숨기고 침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토마스 머튼은 말했다. “내면의 침묵은 절박하게 부르짖는 기도를 낳는다. 이때 인간은 익명성을 지닌 은둔자가 된다. 하나님의 응답이 그 내면 안에 메아리치고 인간은 각성한다.” 당신은 리더인가. 은둔과 침묵을 사랑하는 영적 사람이 되라.

<김창만/목사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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