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우크라이나 사람들

2022-03-1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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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거든 부디 그리운 우크라이나 넓은 벌판 위에 나를 묻어주오/그 무덤에 누워 끝없이 펼쳐진 고향의 전원과 드니프로 강기슭/험한 벼랑을 바라보며 거친 파도 소리 듣고 싶네/적들의 검은 피 우크라이나 들에서 파도에 실려 푸른 바다로 떠나면/나 벌판을 지나 산언덕을 지나 하늘나라로 올라 신께 감사드리겠네...“

이 시 ‘유언’을 쓴 시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는 우크라이나 민중들에게 추앙받는 독립운동가이자 화가, 문인이다. 우크라이나 흐리우냐 화폐에 젊은시절 본인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 새겨져 있다. 이 시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약소국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자유와 저항의 불길을 지폈었다.

17세기 중반 우크라이나 중부에 카자크 수장국이 세워져 백년이상 러시아 차르국의 압력을 견뎠으나 폴란드와 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18세기 후반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확장되었고 195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령으로 넘어갔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선언, 결국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촉진시켰다. 2014년 크림반도가 다시 러시아로 넘어가고 2022년 2월24일(현지시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에 이 시가 소환되었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외치며 항전 중인 대통령과 병사들, 국민들에게 애송되고 있다.

시에 나오는 ‘우크라이나의 넓은 벌판’은 70년대 영화 ‘해바라기(SUNFLOWER)’에서 소피아 로렌이 전쟁이 끝나도 시베리아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헤매던 곳이다. 우크라이나의 드넓은 해바라기 평원은 2차 대전 중 400만 명의 군인들이 싸우다 묻힌 곳이다.

해바라기 밭에서 남편 안토니오의 무덤을 찾아 헤매는 젊은 아내, 화면 가득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해바라기들이 끝도 없이 피어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노랑과 하늘은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이고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國花)이다.

강대국에 휘둘린 이 비운의 땅이 다시 러시아 침략으로 폐허가 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양쪽 나라의 수천,수만 명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고 수백만 명의 피난민이 집을 떠나 피신을 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 양상과 달라진 점은 안방에서 전쟁의 시작과 진행 과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991년 CNN의 걸프전 생중계 이후 2012년 아랍의 봄은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널리 퍼졌다. 요즘은 안방에 앉아 틱톡을 비롯한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먼 곳에서 일어난 전쟁의 현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온 세계가 반전 시위를 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하며 공격을 멈추라고 하건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회담을 하는 시간에도 우크라이나 도시들에 폭탄과 로켓 공격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모두 총을 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 탱크를 막아서고 여성들은 화염병을 만들고 투척 훈련을 한다.

영문도 모르고 전장에 불려온 러시아 병사들은 어떤가, 러시아 국민들은 아들이 전장에 가는 줄도 몰랐다가 포로로 잡힌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되는 등 내부 민심이 동요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서구의 경제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물건 값이 인상되며 식료품점마다 긴 줄을 서고 있다.

전쟁이 나면 혹독한 댓가를 치루는 쪽은 늘 전쟁 중인 양쪽 나라의 국민들이다. 두 나라의 청장년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잃어야 하고 뒤에 남은 여성과 어린이는 궁핍한 삶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채 평생을 살게 된다.

또 후유증이 몇 세대에 걸쳐 나타난다.
이같은 전쟁의 참상은 6.25를 치른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일단 전쟁은 절대로 나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게 하루빨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기 바란다. 대만, 한반도 문제도 멀리 있지 않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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